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자동차의 ‘사운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사진은 전기차 EQS. /사진제공=메르세데스-벤츠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자동차의 ‘사운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조용한 전기차에 안전과 재미를 위한 인위적인 소리를 집어넣고 있는 것. 

그동안 내연기관차에서 기술력의 바로미터는 엔진 제조기술이었다. 특히 듣기 좋은 독특한 톤의 ‘엔진·배기 사운드’를 유지하는 것은 브랜드의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혔다.
하지만 전기차는 자동차의 핵심 동력원이 ‘엔진’ 대신 전기모터와 배터리로 바뀌었다. 엔진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는 만큼 연료를 더 태워 폭발력을 키우고 이때 발생하는 소음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이처럼 큰 소리를 내는 엔진이 없다 보니 공기저항에 따른 풍절음(윈드노이즈)과 타이어 마찰에 따른 노면소음(로드노이즈)만 들린다.

이 같은 특성 탓에 주차장이나 골목 등에서 보행자가 차를 알아차리지 못할 우려가 있고 운전자 입장에선 주행 중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박진감 넘치는 엔진 사운드를 들을 수 없어 감성적 측면에서도 불리하다는 평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업체들은 전기차 내외부 모두에 인위적인 소리를 냄으로써 안전과 감성품질을 모두 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불필요한 소리 줄이는 ‘노이즈캔슬링’
자동차회사들은 주행 중 창문을 통해 넘어오거나 차 하부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창문 유리를 두 겹으로 만들거나(라미네이트글라스, 이중접합유리) 소음이 발생하는 부위에 흡차음재를 설치하기도 한다. 사진은 미니 얼바너트 가상 모델. /사진제공=MINI
자동차회사들은 주행 중 창문을 통해 넘어오거나 차 하부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창문 유리를 두 겹으로 만들거나(라미네이트글라스, 이중접합유리) 소음이 발생하는 부위에 흡차음재를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원가상승과 무게 증가 요인으로 이어지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 차단 성능엔 한계가 있다는 평이다. 이에 업체들은 자동차의 주행소음은 대체로 특정한 형태(음색)가 있는 점을 주목했다.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ANC)은 주행 시 발생하는 소음을 모니터링하고 해당 주파수를 파악, 반대 주파수를 흘려 소음을 상쇄하는 기술이다. 발생하는 소리 자체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람의 귀로 듣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과거엔 국내외 자동차회사들이 이 기술을 직접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근엔 음향회사와 함께 자동차 특성에 맞춘 시스템을 제작, 탑재하고 있다.
제네시스에 탑재된 렉시콘 오디오 시스템. /사진제공=하만인터내셔널

대표적으로 제네시스 G80 전동화모델에는 현대자동차와 하만이 공동 개발한 음향 기술인 능동형 노면 소음 제어기술 ‘ANC-R’이 적용됐다. 이 기술은 하만의 능동형 소음 제어 솔루션 할로소닉(HALOsonic)에 기반하며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를 통해 구현된다.
ANC-R은 자동차 내부에 설치한 4개 센서와 6개의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노면소음을 측정, 분석하면서 반대 위상의 소리를 스피커로 송출, 탑승자가 느끼는 소음의 수준을 낮춘다는 게 하만 측 설명이다.


‘액티브사운드’로 필요한 소리 살린다
자동차업체들은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는 것과 함께 필요한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기아
자동차업체들은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는 것과 함께 필요한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특히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처럼 엔진이 없는 경우 차 외부에서 보행자가 들을 수 있도록 인위적인 ‘소음’을 발생시켜야 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7월부터 전기-하이브리드차에 시속 20km이하 주행 시 56dB 이상 소리를 내도록 ‘음향발생기’를 의무화했고 미국도 2019년 9월부터 친환경차의 최소 소음 규정(모든 친환경차에 시속 30㎞ 미만에서도 배기음을 발생)을 도입했다. 한국은 지난해 7월부터 ‘저소음 자동차’에 의무적으로 배기음 발생 장치가 의무화됐다.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업계도 이 같은 규정에 이미 대응하고 있으며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세계최초로 전기차 전면 그릴 커버를 활용한 외부 음향 발생기(AVAS)를 소개했다.

업체들은 운전자가 속도를 높였을 때를 위한 가상의 사운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차마다 다른 소리를 내던 엔진이 사라진 만큼 제품과 브랜드를 차별화할 청각적 요소가 필요해서다.
BMW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와 계약을 맺고 그가 만든 사운드를 ‘BMW 아이코닉 사운드일렉트릭’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신차에 적용하고 있다. 올해 출시될 전기 SUV iX에도 적용된다. /사진제공=BMW
사운드로 입소문을 탄 전기차는 포르쉐 타이칸이다. ‘E-스포츠 사운드’는 주행 속도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실시간으로 변화돼 운전자가 속도감을 더욱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 연말 출시할 최고급 전기 세단 ‘EQS’에 직접 디자인한 사운드를 적용하며 주행모드나 상태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게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BMW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와 계약을 맺고 그가 만든 사운드를 ‘BMW 아이코닉 사운드일렉트릭’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신차에 적용하고 있다. 올해 출시될 전기 SUV iX에도 적용된다.

기아의 첫 전용전기차 EV6에도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이 탑재됐다. 주행 속도에 따라 음의 높낮이가 실시간으로 달라진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을 동시에 자극하도록 만들어진다”며 “전기차에서는 시각과 촉각 외에 청각 요소의 차별화가 어려운 만큼 업체들을 이 점을 감안해 저마다의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트렌드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