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윤용민 경장. 2023.3.14/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김정현 기자 = # 다크웹 등을 통해 은밀히 마약을 파는 판매책의 정체를 파악했지만 바로 붙잡지 않았다. 싸움은 이제부터였기 때문이다. 판매책에게 마약을 건넨 공급책까지 찾는 것이 이번 수사의 진짜 목표였다. 판매책의 동선을 쫓아 부산까지 내려갔고 공급책과 접선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놀랍게도 해당 공급책은 부산 지역 내에서 수십년 동안 활동한 유명 마약상이었다. 그는 오랜 경력답게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한 달간 주거지를 옮겨 다니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압수수색영장까지 발부받아 주거지에서 그를 체포하려 했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윤용민 경장(32)은 이번 수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받고도 공급책을 놓쳤던 순간을 꼽았다.
다크웹 마약 전담팀에서 근무하는 윤 경장은 끈질긴 추적 끝에 마약 판매책 A씨와 공급책 B씨, C씨 등 총 3명을 차례로 검거했다. 이외에도 다크웹과 암호화폐(가상자산)를 악용해 마약을 거래한 마약사범 100여명을 검거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특진했다.
압수된 필로폰. 기사와는 무관. (서울경찰청 제공) 2022.10.26/뉴스1
◇다크웹에서 발견한 마약 판매책…검거 않고 공급책 만날 때까지 쫓아
마약사범을 붙잡는 과정은 매 순간 난관의 연속이었다. 윤 경장은 지난해 3월 다크웹에 올라온 필로폰 판매 게시글을 보고 20대 마약 판매책 A씨의 존재를 처음 파악했다. 이후 A씨가 서울 강남구 등지에서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거래한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던지기 수법이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마약 판매자들이 주택가 은밀한 곳에 마약을 숨겨두고 그곳의 사진을 찍어 구매자에게 보내고 직접 찾아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윤 경장은 A씨의 동선 등을 추척해 1주 만에 주거지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A씨를 바로 체포할 수도 있었지만 공급책까지 일망타진하기 위해 또 다른 추적을 시작했다. 윤 경장은 "단순히 판매책만 잡고 끝낸다면 마약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최종적으로 공급책을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동 경로를 쫓은 지 수일이 지났을 무렵 A씨가 갑작스럽게 부산행에 나섰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윤 경장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A씨는 부산에서 공급책인 50대 B씨를 만났다. 윤 경장은 "A씨와 B씨의 거래는 차에서 이뤄졌다"며 "B씨는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고자 차를 타고 주변을 빙빙 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쫓아야 할 대상은 이제부턴 B씨였다. B씨는 수십년간 부산에서 마약상으로 활동하며 꽤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A씨를 먼저 검거하고, B씨를 붙잡기 위한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윤용민 경장. 2023.3.14/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부산서 유명한 마약 공급책, 은신처 세 번 옮기는 치밀함…집요한 추적
B씨가 마약상이라는 정황이 확실했던 만큼 금세 검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수사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B씨는 마약상으로 이미 여러 차례 검거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B씨는 마약을 거래할 때는 물론 일상생활에도 주변을 수시로 살폈다. 경찰의 추적을 눈치채면 B씨가 자취를 감출 수도 있는 만큼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어려웠다. 윤 경장은 "들킬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미행 중간에 철수하는 일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B씨는 한 달 잠복기간 동안 세 번이나 은신처를 옮겼다. B씨를 체포하기 위해 은신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받았지만, B씨가 이미 사라진 후여서 영장은 무용지물이 됐다. 허탈감이 컸지만 B씨의 지인 등을 통해 새로운 은신처를 다시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한 달 동안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 경장은 B씨의 마약 거래 시간이나 동선 등의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마약 거래가 야간에 이뤄지고, 특정 가방이 이용된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윤 경장은 이런 특징들을 토대로 B씨가 마약 거래를 하러 나간다는 확신이 생기자 주저 없이 체포했다. 은신처에선 필로폰 150g이 나왔다. 이는 5000여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필로폰 1g이 70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는 걸 감안하면 1억원이 넘는다.
윤 경장의 수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B씨가 엄청난 양의 필로폰을 확보하도록 지원한 또 다른 공급선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B씨의 진술을 토대로 진주에서 거주하고 있던 60대 마약상 C씨도 붙잡았다. C씨 역시 잘 알려진 마약상으로 수사가 시작된 것을 알고 거주지를 옮겨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윤 경장은 "C씨를 잡기 위해 또다시 2주를 잠복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2월에 시작한 수사는 5월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마약 수사에선 이례적으로 공급책까지 잡아들였다는 점에서 석 달간의 수고는 충분히 보상받았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윤용민 경장. 2023.3.14/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7년째 마약 수사관으로 근무…"결국 다 검거된다" 경고도
윤 경장은 '형사'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런 모습이다. 듬직한 체구에 강한 첫인상과는 달리 웃을 땐 앳되고 순수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학교 때 '청소년 경찰 포돌이'로 활동했던 것이 그를 경찰로 이끌었다. 부모님은 아들이 경찰이 되겠다고 하자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윤 경장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경찰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단호히 "없다"고 답했다.
윤 경장은 입직 후 7년여의 시간 대부분을 마약 수사관으로 보냈다. 마약 수사관의 매력을 묻자 윤 경장은 "마약 매수자들을 잡을 때면 대부분 '안 걸릴 줄 알았다'고 말한다"며 "마약사범들이 단약의 의지를 보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웃었다.
하지만 마약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들은 결국 그 문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며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경장은 "암호화폐 등을 이용하면 마약 추적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결국 다 걸리게 된다는 것을 유념하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