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Z세대들에게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무지출 챌린지'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은 무지출 챌린지를 도전한 기자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 /사진=염윤경 기자
"오르는 물가에 소비라도 줄여야죠."
고물가에 서민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수입은 제자리이지만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이제는 아예 소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Z세대 사이에서는 '무지출 챌린지' 열풍이 불고 있다. 무지출 챌린지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아예 하지 않는 도전이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는 '무지출 챌린지 브이로그' '무지출 챌린지 후기' 등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무지출 챌린지 꿀팁' '무지출 챌린지 방법' 등 무지출 챌린지 팁을 공유하는 게시글도 많다.


과연 직장인이 돈 한푼 쓰지 않고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해봤다.
점심은 도시락·커피는 텀블러… 문제는?
기자는 텀블러 챙기기, 도시락 싸기, 얻어먹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무지출 챌린지를 시도했다. /사진=염윤경 기자
무지출 챌린지 첫날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텀블러 챙기기와 도시락 싸기였다. 평소 회사 앞 카페에서 2000원짜리 저렴한 커피를 즐겨 마셨지만 무지출 챌린지를 하는 동안에는 이마저도 사치였다. 커피를 구입하는 대신 회사에 마련된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셨다.
점심은 보통 동료들과 함께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해결하지만 무지출 챌린지를 위해 아침부터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은 집에 있는 반찬과 밥으로 간단하게 준비했다. 텅 빈 회사 휴게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조금 쓸쓸했지만 적당히 배도 부르고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2일 차에도 텀블러 챙기기와 도시락 싸기로 무난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귀찮음이었다. 아무리 간단하게 준비하더라도 출근 전에 도시락을 싸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무지출 챌린지 3일 차에는 도시락을 쌀 만한 반찬도 마땅찮았다. 대충 집에 있는 햇반과 3분 카레를 챙겨서 회사에 비치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4일 차에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간단하게 음식을 챙길 정신도 없이 급하게 출근했다. 이날 점심식사는 휴게실에 있는 컵라면으로 때웠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만큼 저녁 무렵 몹시 배가 고팠다. 하지만 저녁식사 역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외식과 배달 음식의 유혹을 뒤로 하고 '냉장고 파먹기'에 돌입했다.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가장 요긴했던 것은 과거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대량으로 주문해둔 냉동 닭가슴살이었다. 냉동실에 잔뜩 쌓인 닭가슴살은 무지출 챌린지 기간 동안 훌륭한 식량이 됐다. 다이어트가 된 것은 덤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선배들과의 점심약속이었다. 무지출 챌린지 5일차 때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라는 선배들의 권유에 기쁜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파스타와 피자 등 오랜만에 먹는 외식 메뉴의 맛이 감격스러웠다. 맛있는 점심에 커피까지 사준 선배들의 사랑에 감동했다.
무지출 챌린지, 여가와 사회생활은 어떻게?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여가를 즐기는 것과 사회생활이었다. 사진은 서울 강북구 문화정보도서관 1층 모습(위)과 지난 4월23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자의 모습. /사진=염윤경 기자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가장 크게 느낀 빈자리는 의외로 '카페'였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이 기자의 소비생활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이번 챌린지를 통해 깨달았다. 보통 점심을 먹은 후에는 동료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누곤 했지만 카페에 갈 수 없으니 1시간30분의 점심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챌린지 기간엔 점심식사 후 카페에 가는 대신 사무실이나 회사 근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동료들과 함께 청계천 일대를 산책하기도 했다.
기자는 카페를 휴식 목적 외에 업무공간으로도 자주 이용한다. 주말에는 보통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무지출 챌린지 6일 차인 토요일, 집에서라도 일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카페 대신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 탐방에 나섰다. 도서관에 가보니 1층에 공유형 오피스와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 조성돼 있었다. 너무 엄숙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아 업무나 공부를 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카페보다 능률도 더 오르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간관계였다. 퇴근 후 맥주 한잔 하자는 친구들의 제의에도 "오늘은 안 된다"며 씁쓸하게 거절 해야만 했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기프티콘 한 장 보내주지 못하고 "축하한다"는 인삿말로 대신했다.

하지만 무지출 챌린지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오래전 부터 예정된 약속이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을 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지출 챌린지를 어길 수도 없는 노릇.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은 "날씨가 좋으니 공원에 가자"라는 핑계였다. 다행히 친구는 만족해했다. 공원에서 따릉이를 대여해 자전거를 타며 놀았다. 따릉이는 고맙게도 친구가 결제해 줬다.
약 16만원 절약 성공… 장기적으로는?
기자는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약 16만원의 생활비를 아낄 수 있었다. 사진은 기자의 4월 한 달 가계부(왼쪽)와 무지출 챌린지 전주와 무지출 챌린지한 주의 생활비 비교. /사진=염윤경 기자
무지출 챌린지를 하지 않은 전 주에 기자가 지출한 생활비는 16만1590원이었다. 하지만 무지출 챌린지한 주에는 생활비를 한 푼도 쓰지 않았으니 약 16만원의 돈을 아낀 셈이다.
무지출 챌린지를 장기적으로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글쎄'다. 무지출 챌린지를 하며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사회생활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도 없고 퇴근 후 친구와 만나 맥주 한잔할 수 없는 삶은 몹시 팍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커피를 마시거나 종종 도시락을 싸는 것은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한다면 꾸준히 실천 가능한 부분이어서다. 불필요하게 카페에 가거나 외식과 배달 음식의 횟수를 줄이는 것도 장기적으로 실천 가능한 절약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