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11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진행된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 참석,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임한별(머니S)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오늘(2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여는 가운데 3.50%인 기준금리가 9차례 연속 동결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치(2%)를 웃돌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3.50%인 기준금리의 조정 여부를 논의, 결정한다. 이번 회의부터는 지난 13일 취임한 황건일 신임 금통위원이 합류한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채권 보유·운용 관련 종사자(55개 기관·100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00%가 이날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기존과 같은 연 3.5%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3.25%에서 3.50%로 0.25%포인트 인상한 뒤 같은 해 2·4·5·7·8·10·11월에 이어 지난달까지 8차례 연속으로 동결을 지속했다.


한은이 9차례 연속 동결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것은 고물가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8%로 6개월 만에 2%대로 내려 앉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주 구매하는 쌀, 라면, 돼지고기 등 체감물가에 가까운 품목 144개를 조사해 작성한 지수인 생활물가지수는 3.4% 상승했다.

지정학적 분쟁에 따라 국제 유가가 더 오를 것이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다음달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은 내부에서도 '라스트 마일(last mile·마지막 단계)'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지난달 '물가안정기로의 전환 사례 분석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물가안정기로의 진입에 실패했던 사례를 보면 마지막 단계(last mile) 리스크에 대한 부주의에 기인하는 경우가 다수였다"며 "큰 폭의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기술적으로 따라오는 기저효과를 물가안정기로의 진입으로 오인하면서 정책당국이 성급하게 완화기조로 전환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계부채도 금리 인하를 결정하는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과 카드사, 백화점 등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 잔액은 1886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2022년(1867억6000만원)과 비교하면 18조8000억원 늘어 잔액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다. 2022년 증가폭(4조6000억원)보다 확대됐다.

주담대 잔액은 전분기 대비 15조2000억원 증가한 1064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증가폭은 전분기(17조3000억원)보다 축소됐지만 작년 한해동안 주담대 증가 폭은 51조원에 달했다.

정부가 올 4월 선거를 앞두고 신생아특례대출 출시,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확대 등 주택 수요 심리를 자극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가계부채 증가세는 계속 이어지고 고금리로 주춤했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고 한은이 금리를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수출이 회복하고 있지만 고금리와 고물가에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한은은 이날 금리 결정과 함께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제시한 기존 전망치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제시한 바 있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제시하며 지난해 11월 전망치를 유지했다.

금융시장 불안 우려도 높은 상황이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부동산 프로젝트(PF) 부실 리스크 확대 우려가 커지면서 중견 건설사들은 유동성 위기 우려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높였다가는 부동산 가치 하락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한 것도 한은이 동결을 지속하고 시장을 관망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미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부터 5.25~5.50%를 유지해 한·미 기준금리 역전 차는 역대 최대인 2.00%포인트에 이른다.

당초 1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3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라진 데 이어 지난달 미국 물가가 예상치를 웃돌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은 하반기로 미뤄진 상황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3% 상승해 전문가 예상치 0.1%를 웃돌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 대비 0.5% 올라 예상치 0.1%를 상회했다.

지난 13일 발표된 지난달 CPI도 전년 대비 3.1% 상승해 시장의 예상치(2.9%)를 상회했다. CPI에 이어 PPI도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전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다음달 금리 동결을 이어갈 가능성을 93.5%까지 올렸다.

연준의 5월 인하 전망은 이달 초 60%대에서 31.8%로 낮아졌다. 한은이 미국과 금리 역전 차를 더 벌리지 않고 동결을 이어가다 연준의 금리 인하 이후 금리를 낮출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번에도 9차례 연속 동결을 지속하면서도 매파적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1월 금통위 직후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