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모습./사진=뉴시스


◆기사 게재 순서
①지방으로 간 공공기관… "지역 경제 살아났나요?"
②나주 이전 10년 '한전'… "만년 과장으로 남겠습니다"
③부산 생활 19년차 '거래소'… 처참한 금융중심지
④'부산行' 산업은행, 젊은 직원 줄퇴사에 10년간 7조 손실 추정
⑤10명 중 8명 "본사 가기 싫어"… LH 직원 처우 나빠졌다
⑥부산-서울 잦은 출장… 피로도 높은 HUG 직원들
⑦고시원에 상사와 동거 중… '신의 직장' 공공기관 직원


4·10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KDB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두고 정치권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13일 "산업은행법 개정 이전이라도 실질적인 이전 효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동북아 금융허브도시 도약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산업은행 노조는 금융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며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총선용 행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북아 금융허브?… 산은법 개정은 '안갯속'
부산시 등에 따르면 산은 사옥은 부산 남구 문현금융로40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내 1만7589.7㎡(일반용지 1만6973.8㎡, 주차장 부지 615.9㎡) 부지에 45층 규모로 건립된다. 산은이 4000억원을 투입해 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해인 2027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지구를 정책금융중심지로 지정하면서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30여개 기관이 입주해 있다.


국책은행인 산은 본점이 이곳으로 이전하면 시너지 효과가 더해져 금융업과 남부권 연관산업의 부가가치증대 등 동북아 금융허브 도시로 도약할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하지만 산은법 개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본점 및 지점 등의 설치) 제1항은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2월13일 부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그것만 저희가 '부산으로 한다'로 고쳐도 되고 규정 자체를 없애면 되는 것"이라며 "법 개정 전에도 산업은행 부산 지점이 영호남을 아우르는 영업총괄본부로서 기능을 하게끔 빨리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산은은 이러한 정부 기조에 발맞춰 2022년 11월 동남권투자금융센터를 신설하고 부산에 위치한 해양산업금융본부 산하 해양산업금융실을 해양산업금융1실과 해양산업금융2실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산은은 동남권 영업조직을 기존 153명에서 237명으로 확대했다. 이를 두고 '부산 이전에 대비한 선발대'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부산 가기 전 미리 짐 싸는 MZ 직원 '줄이탈'
산은 본점이 부산으로 이전되면 국가경제 손실이 커지고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산은 노조 측은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부산 이전을 왜 추진해야 하는 것이냐며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세대의 인력유출 문제다. 지난해 산업은행 퇴직자(정년퇴직·임금피크제 적용·무기계약직 제외)는 87명으로 행원·대리급에 해당하는 5급 직원들은 40명, 과차장급인 4급 직원들은 18명이 은행을 떠났다. 전체 퇴직자 중 약 66.7%가 MZ세대(1980년 초반생~2010년생)에 집중된 셈이다.

2022년엔 97명의 직원들이 산은을 떠났는데 이중 4급 직원은 23명, 5급(행원대리) 직원은 34명 등 실무급 직원들만 총 57명이 퇴사했다. 2022~2023년 2년간 MZ 직원 115명이 짐을 쌌단 얘기다. 이는 산은의 부산 이전 이슈가 시작되기 이전인 과거 2개년(2020~2021년, 34명)과 비교해 3.4배 급증한 수준이다.

산은 관계자는 "2022~2023년 2년 동안 직원들이 제일 많이 퇴사한 부서가 법무실(10명), 재무기획부(8명), 자본시장부문 PE(사모펀드)실(7명) 순"이라며 "법무실은 변호사, 재기부는 회계사가 많은 부서라서 전문 자격증이 있는 직원들이 먼저 이탈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PE실은 사모투자전문회사 업무에 대한 출자, 운용관리 등이 주 업무인만큼 내부에선 업무 연속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산은의 부산 이전이 현실화하면 MZ 직원들의 이탈이 늘어 인력의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산은은 부랴부랴 신입 채용 요건을 완화하고 공채 규모를 늘렸다.

산은은 지난해부터 5급 신입 행원에 지원하는 회계사를 대상으로 필기시험을 면제하고 있다. 통상 서류 심사와 필기시험, 1·2차 면접을 거쳐야 하지만 회계사 자격증을 보유하면 서류 심사와 두 차례 면접만 진행해 채용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채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산은은 지난해 156명(상·하반기 각각 78명)의 신입행원을 뽑았는데 2022년(129명)보다 27명 늘었다. 현재도 80여명의 신입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수익 감소 6.5조 달해… 비용 0.5조 증가
무엇보다 국가경제 손실과 산은의 경쟁력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재무학회에 따르면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10년간 6조5337억원의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수익원 별로 10년간 누적 수익 감소액을 세부적으로 보면 ▲기업금융 2조5960억원 ▲트레이딩 1조3900억원 ▲PF(프로젝트파이낸싱) 1조3090억원 ▲PE채권발행 자문수수료 2600억원 ▲벤처금융투자 1110억원 등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신사옥 건설(1813억원)·주거공급(1424억원)·인력이동 재충원(238억원)·퇴직금(966억원)·출장과 이동경비(170억원) 등 향후 10년간 비용이 4702억원 늘 것이란 추정이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지방에 있는 기업이라도 재무팀은 서울 사무소에 있는 경우가 많아 기업금융을 하는 은행은 지방에서 일하기 힘든 구조"라며 "지방으로 내려간다면 직원의 절반가량은 매일 서울 출장 중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은 내부 출장규정상 서울·부산 출장의 경우 일비와 식비가 각각 하루당 2만5000원씩이다. 여기에 교통비 5만9800원(편도)이 고정비로 지출되고 숙박비의 경우 일 한도 10만원 실비로 지원되고 있다.

1인당 1박에 31만9600원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본점 직원의 50%(약 935명)가 한 달에 한 번 출장을 간다고 가정하면 연 35억8400만원의 출장비가 예상된다.
경쟁력 약화로 적자 시 정부가 보전… 결국 세금으로
부산 이전으로 인한 이러한 비용 증가와 수익 감소로 산은이 적자를 내면 그 부담을 온전히 국민들이 떠안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산은은 지난해 약 2조500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해 역대 최대 규모인 8781억원의 배당금 지급을 결의했다. 이 배당금은 산은의 100% 주주인 정부에 돌아간다.

산은 관계자는 "9000억원에 가까운 배당금을 정부에 내면서 경제에 기여하고 있지만 부산 이전으로 손실을 내게 되면 정부가 이를 보전하게 돼 있다"며 "이는 곧 산은의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단 얘기"라고 지적했다.

산은은 국책은행이라는 특수성으로 정부의 지원이 법에 명시화돼 있다. 산업은행법 제 32조 '손실금의 보전' 조항에 따르면 산은의 결산순손실금은 회계연도마다 적립금으로 보전하고 적립금이 부족할 땐 정부가 보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의 부산 이전의 명분으로 지역균형발전이 내세워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수확보, 부동산개발과 같은 이권 다툼이 크다고 보는 게 맞다"며 "산은 본점이 부산으로 바뀌면 부산 수영세무서의 세수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