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시중은행들의 외화대출 잔액이 줄고 있다. 강달러에 높은 이자부담을 느낀 국내기업들이 외화대출을 갚고 있어서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외화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82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기(94억달러) 대비 12.2%(11억5000만달러) 줄었다.

원화로 환산하면 지난달 말 원/달러(1347.50) 환율 기준 약 1조5496억원 감소한 셈이다.


이는 달러 강세에 따라 외화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이자상환 부담이 커진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 수록 이자를 내기 위한 달러 환전시 내야하는 원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높은 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자 외화대출 상환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화대출은 금융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외국환은행이 특정 목적에 한해 융자를 외화로 해주는 제도다. 외화대출을 받는 주요 대상이 대부분 기업으로 한정돼 있으며 대기업 비중이 높다.


은행 입장에선 외화대출 자산이 늘어날 수록 이자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수익성 측면에서만 보면 호재다.

하지만 건전성 관리 측면에선 부담이라는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이미 높은 수준의 달러 가치가 앞으로 추가 상승하고 고금리가 상당기간 지속되면 대출 자체의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들은 외화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을 맞춰야 한다. 은행은 약 1개월간 외화가 순유출된다고 가정했을때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외화 현금화자산(고유동성 자산)을 일정수준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외화 대출자산이 늘면 필요로 하는 외화 현금화자산 규모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직접 외화를 사들이거나 외화예수금을 늘려 대응하지만 강달러 기조 속 외화 현금화자산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달러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5대 은행의 외화대출 잔액은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3.0원 내린 1379.2원으로 마감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장중 1400원 선을 뚫으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기록했던 때는 ▲1997년 12월~1998년 6월 외환 위기(IMF사태) ▲2008년 11월~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9~11월 레고랜드 사태 등 총 3번에 불과했다.

증권가에선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에 따라 유가와 달러가 추가 강세를 보인다면 원/달러 환율이 1440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4월 이후 원화 가치의 낙폭이 가장 크다"며 "한·미·일 공동 구두개입에 환율의 추가 상승세는 잦아든 모습이지만 현 상황에서 원화만의 약세가 아니라 달러 강세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개입 경계만으로 주요국 환율의 방향성 전환을 말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딘단했다.

이어 "해외투자로 인한 달러화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틀에서 원화 약세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표=NH투자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