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간 임대차계약 분쟁에서 흔히 발생하는 '반려동물 특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각자 권리 침해를 주장하며 팽팽하게 대립하는 문제 중의 하나다. 법원은 반려동물 특약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동물 사육 여부를 고지할 의무가 없고 동물 사육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이 일방 해지될 수는 없다는 판결을 잇따라 냈다.
이에 업계에선 일상화된 반려동물 사육 행위가 부동산 사용계약 조건으로 제한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공정성 논쟁도 벌어진다. 시설 손상시 복구 의무를 명시한 계약의 법적 이행으로서 분쟁 해결 방법은 충분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최근 건설공사 계약에서 물가상승을 인정하지 않는 발주사와 시공사간 소송 사태도 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계약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계약 상대자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느냐는 문제에서 연관성을 갖는다.
건설공사를 의뢰한 발주사는 시공사에 계약상 강제 조항을 요구할 수 있는 갑의 지위에 있다. 특히 경쟁입찰에선 부당특약의 소지가 있어도 일감을 따내야 하는 건설업체가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협상의 우위를 빼앗기게 된다.
이 같은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대표 사건이 KT 공사비 소송 사태다. 국내 최대 통신사 KT는 유선전화 시절 전국 땅의 핵심 위치에 전화국을 보유하며 부동산 공룡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수많은 땅이 유휴 부지로 남아 KT는 개발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건설업체들에 슈퍼 발주사로 부상한 것이다.
문제는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중동 전쟁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며 대부분의 공사계약이 공사비 급등 사태를 직면했다. 공사 적자에 따른 사업 중단과 아파트 입주 지연 사태로도 이어졌다.
협상력이 취약한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조합과 영세 시행사 등은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에 꼼짝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지만 발주사로서 힘이 있는 KT는 중재를 회피할 뿐 아니라 정부·법원의 조정 권고마저 거부했다.
KT는 계약 당시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따라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며 쌍용건설과 한신공영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쌍용건설이 2023년 4월 준공한 KT 판교 사옥은 총 공사비 967억원 규모로 추가 공사비 171억원을 놓고 다투고 있다.
올해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준공 예정인 KT 광화문 사옥, 서울 광진구청 신사옥과 롯데캐슬 이스트폴(1063가구)에 대해서도 KT 측은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대한 인정 여부는 천재지변 등 예측 불가한 경기변동 리스크를 경제활동 주체 일방이 온전히 부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들은 팬데믹과 전쟁이 정부도 예측할 수 없었던 리스크로서 계약 당사자가 공동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KT는 사업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은 시공사와 발주사가 동일하다는 입장이다.
천재지변과 유사한 수준의 전쟁 등 이슈에 대해 발주사와 시공사가 이익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각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정부는 공공공사의 물가변동에 대한 에스컬레이션을 법으로 보호하고 민간계약의 분쟁조정을 지원해 시공사에 힘을 실어줬다. 이는 건설산업이 경제 근간과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등이 배경이다.
설립 이후 20년 넘게 공기업이던 KT가 2002년 민영화를 이루면서 부동산 자산을 이용해 과도한 경제 이익을 추구한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KT는 해당 부동산들이 민영화 과정에 사적 재산으로 전환됐고 재무제표에도 반영한 만큼 공공자산을 이용한 이익 사유화로 규정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무효하다는 법원의 판례가 있다. 다만 KT 측은 개별 사건의 특약에 대한 정당성이 다르게 해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의 판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인 가운데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이 늘고 있는 KT는 고민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노향 머니S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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