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40년을 내다보지 못한 인구정책은 인구절벽을 막을 '타이밍'을 놓쳤다. 1980년대부터 저출산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인구억제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2020년까지 인구증가율을 1%로 낮춘다는 목표는 1988년 조기 달성했다. 인구절벽에 따른 '국가소멸' 위기를 자초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유통업계를 보면 인구문제처럼 정책 전환의 타이밍을 놓쳐 자칫 유통 생태계가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19를 겪으며 가속화된 이용자 감소와 이후 불어 닥친 경기침체에도 영업일 등을 계속 규제 받고 있는 대형마트가 대표적이다.
2012년 3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따라 대형마트는 영업 축소와 신규 출점 제약을 받았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지켜 달라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대형마트는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받고 월 2회 의무휴업일(대부분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을 지정해야 했다. 전통시장 반경 1㎞ 안에서는 신규 출점이 불가능해졌다.
제도 도입 13년 동안 취지에 걸맞은 변화가 일어났을까.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대형마트의 위기만 불러왔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유통산업발전법이 지목된다. 개정된 법이 대형마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소비시장의 주도권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주요 유통업체 매출 중 온라인 유통업체 비중은 50.6%로 절반을 넘어섰다.
대형마트도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영업시간이 아닐 때는 온라인 주문을 받을 수 없다. 쿠팡 등 기존 이커머스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규제를 받지 않는 온라인쇼핑, 이 중에서 이커머스의 폭발적 성장은 대형마트는 물론 전통시장까지 고사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의무휴업일 폐지, 새벽배송 허용 등을 포함한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도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국 불안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구증가 문제가 안정됐는데도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시대착오적 구호가 나왔던 것처럼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이 살아나지 않는다. 이커머스 등쌀 때문인지 요즘에는 대형마트가 잘 돼야 주변 상권이 살아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말, 서울 창동역 부근을 찾았다. 약속보다 일찍 도착해 국내 최초 대형마트라는 타이틀을 보유한 이마트 창동점(이마트 1호점)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영업시간인 오전 10시가 되지 않았는데 입장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섰다. 20~30대보다는 50~60대가 다수였다. 주변에는 붕어빵, 옥수수와 같은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을 포함해 다양한 점포와 상가도 활기를 띠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나타난 지인은 점심을 함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줬다. 이마트 입장을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은 주변 아파트단지 주민들로, 중장년층이 많고 다음날이 의무휴업일인 일요일이어서 개점 전부터 몰린 것 같다고 했다. 이마트가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에는 노점은 물론 주변의 다른 점포까지 문을 닫는다고 한다.
1993년 문을 연 이마트 1호점은 창동역 주변 상권과 어우러져 도심 속에 전통시장과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살갑고 정겨운 풍경이 낡은 규제로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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