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와 치솟는 월세에 대학생들이 '하숙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한 하숙집 입구 /사진=이소연 기자
1990년대까지만해도 하숙은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였다. 당시는 원룸의 형태가 일상화되지 않았다. 원룸의 형태도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현대적인 원룸이 아닌 단순한 '방'의 개념이 더 강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함께 높은 물가가 겹치면서 대학가에 다시 하숙이 등장하고 있다.
이승원 맘스테이 대표는 "경기 불확실성으로 물가 및 월세 부담이 증가해 원룸보다 가성비가 좋은 하숙을 찾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올해는 한국 학생뿐만 아니라 외국인 유학생들의 예약 문의도 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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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비 부담이 확 줄어요"… 그들이 하숙을 찾는 이유━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A하숙의 저녁 반찬이다. A하숙은 점심, 저녁 하루 2번씩 식사를 제공한다. /사진=이소연 기자
학생들이 하숙에서 꼽은 가장 큰 장점은 '밥'이다. 경북에서 온 재수생 소은호씨(19·남)는 "일단 밥이 제공되니까 걱정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수능 때까지 계속 하숙집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동원씨(21·남)는 "군 전역 후 학교 근처로 독립하고 싶어 하숙을 택했다"며 "나도 누군가 밥을 챙겨준다는 점이 좋다"고 웃어보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하숙집으로 옮겨온 학생도 있었다. 하숙 생활 1개월 차인 박서영씨(22·여)는 "기숙사는 경쟁률도 높고 룸메이트를 잘못 만나면 불편하다"며 "지금 지내는 방은 1인실에 화장실도 있고 밥까지 나오니까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가 좋다"고 말했다.
A하숙의 30개 방은 만실이었다. 방 크기에 따라 월세 48~60만원에 방을 제공한다. 보증금은 받지 않는다. A하숙 사장은 "현재 입실 대기자가 3명이나 있다"며 "건강한 집밥을 먹을 수 있으니 부모들이 하숙으로 다시 가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한 하숙집 방 내부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원룸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점도 하숙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번 학기부터 하숙을 시작했다는 김예린씨(25·여)는 "누군가랑 같이 산다는 게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며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나누고 서로 택배를 챙겨주는 문화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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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컨디션 좋으면 70만원까지"… 대학가 원룸의 현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반지하 원룸의 내부 모습. /사진=이소연 기자
부동산 중개업자는 기자를 '반지하' 원룸으로 안내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 창문이 있었지만 햇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방이 세로로 길어 공부하는 학생들이 책상을 두기에는 애매한 구조였다.
다음으로 안내한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5만원. 정남향에 채광이 좋은 방이었다. 문제는 '옥탑'이라는 점이었다. 폭이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중개업자는 기자에게 연신 "계단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다. 단열 문제도 우려됐다.
채광이나 인테리어 상태가 조금만 나아져도 월세는 훌쩍 뛴다. 부동산 중개업자 이모씨는 "요즘엔 반지하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선"이라며 "컨디션 좋은 지상층을 원한다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은 봐야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6~10만원의 관리비까지 붙는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 원룸(전용면적 33㎡ 이하) 평균 월세는 60만9000원, 평균 관리비는 7만4000원이다.
식비 부담도 학생들의 지갑 사정을 어렵게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했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김밥(4.6%), 햄버거(4.2%), 편의점 도시락(3.5%) 등의 간편식도 3~4%대의 상승률을 보였다.
결국 식비, 관리비, 보증금 등을 감안하면 하숙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인 셈이다. 식사를 제공하는 하숙집 평균 월세는 50~60만원 사이다. 보증금은 없거나 200만원 이하로 원룸보다 적다. 관리비도 따로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천동에서 19년째 하숙집을 운영 중인 유상숙씨(71)는 "최근 들어 예약 문의가 늘었다"며 "원룸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하숙을 찾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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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가격 그대로… 하숙집 이모님들도 고물가에 고통 받는다━
그렇다고 하숙집을 운영하는 사장들의 표정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2019년부터 하숙집 운영을 시작한 김모씨(60)는 "'하숙은 무조건 싸야 한다'는 인식이 답답할 때도 있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방 개수가 많거나 자기 건물에서 운영하는 분들은 10년 전 월세 그대로 유지해도 큰 지장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가격에 맞추면 유지가 어렵고, 그렇다고 혼자 가격을 높이면 학생을 모으기 어렵다는 설명이다.3년 정도 하숙집을 운영한 조모씨(57)도 비슷한 생각이다. 조씨는 "물가가 오르면 누구든 영향을 받는데 하숙만 낮은 가격을 유지하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라며 "식비를 따로 받고 있음에도 식재료 값이 너무 올라서 감당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배추 한 포기 소매가격은 5571원으로 전년 대비 48% 올랐다. 무 1개 가격은 2813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88%나 올랐다.
따뜻한 밥 한 끼와 이모님의 다정한 말 한마디, 학생들에게 하숙집은 낯선 도시에서의 작은 안식처다. 학부모에게는 원룸보다 안심되는 공간이다. 그 온기 뒤엔 치솟는 식재료 값과 멈춘 방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장들이 있었다. 잊혀가던 하숙 문화가 다시 떠오른 게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편이기도 하다. 하숙의 부활은 단순히 트렌드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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