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행정명령 발효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정부의 대책 마련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수출 선적부두. /사진=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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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단위 피해 우려에 업계는 발 동동━
28일 로이터·AFP통신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에서 만든 모든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4월2일 발효)하는 행정명령에 지난 26일(현지시각)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경량트럭을 포함한 수입산 자동차 및 주요 자동차 부품이 관세 부과 대상이다.
자동차와 자동차 엔진, 엔진부품, 변속기, 파워트레인 부품, 전자부품 등도 포함됐다. 자동차가 미국 밖에서 생산됐지만 부품이 미국산이라면 해당 부품에 한해서는 관세가 면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면 관세가 없다"고 엄포를 놓으며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국가·기업에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관세 부과로 인해 연간 1000억 달러(약 147조원)의 관세 수입을 예상한다. 미국 최우선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수입을 미국의 부채를 줄이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비상이다.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는 100만여대 수준이다. 멕시코공장에서 보낸 14만여대까지 합치면 114만여대가 현대차·기아의 미국 수출 물량. 단순 계산으로 3000만원짜리 차 114만대를 수출하면 34조2000억원을 버는데 관세 25%를 적용하면 8조5500억원을 뱉어내야 한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북미 직접 수출과 완성차업체를 통한 간접 수출 길이 모두 막힐 것으로 예측되는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의 피해도 우려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자동차 부품 전체 수출 규모는 225억4700만달러(약 33조1000억원)다. 이 가운데 미국 수출은 82억2200만달러(약 12조1000억원)로 36.5%의 비중을 차지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10대 수출 품목 가운데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4억달러(약 6조5000억원)로 4위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셈인데 미국이 수출 장벽을 세우면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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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출기업 비상인데… 대책 없는 정부는 느긋━
국내 수출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되지만 정부의 대책 마련은 요원하다. 관세 부과 행정명령 발효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뒤늦게 자동차업계 현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청취했지만 구체적 대안을 들고 방문한 자리는 아니다. 박 차관은 지난 27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의 자동차 선적작업 현장을 점검하고 경기 광명시 기아 광명공장도 찾아 자동차 제조라인을 살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행정명령 발효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자동차 기업 및 관련 협회·연구기관과의 긴급 회의에 참석했던 안덕근 산업부 장관. /사진=뉴시스
경영상 어려움이 큰 부품기업에 대한 긴급경영안정자금 마련과 시장다변화 등 다양한 대책의 필요성도 강조했지만 정부의 관련 대책 발표는 '다음달 중'이라고만 결정했을 뿐 구체적인 날짜조차 미정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도 최근 두 차례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행정부의 당국자와 만나고 돌아왔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국 산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안 장관은 지난 2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자동차 기업 및 관련 협회·연구기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도 열었지만 알맹이는 없었다.
이번 대책회의에서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에 따른 국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업계의 영향·대응방안이 안건에 올랐지만 관세 부과 발효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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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살길 찾아 나선 기업━
허둥지둥 대는 정부와 달리 기업은 직접 관세 출구전략을 모색 중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2028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부품 및 물류·철강·미래 산업 등 주요 분야에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 회장의 발표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호응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로 인한 관세 혜택 등은 정해진 바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주요 외신 등은 정 회장의 이번 투자 결정으로 다른 나라보다 낮은 관세율을 부과 받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한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행정명령 발효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열린 HMGMA 준공식에서 HMGMA에서 생산된 전기차 아이오닉5에 기념 서명을 하던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도 완공했다. HMGMA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계획됐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를 지나 이번 2기 트럼프 행정부 때 완공되면서 관세 부과 등과 관련된 미국시장 대응력을 더 높일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기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연산 36만대), 기아 조지아 공장(연산 34만대)에 이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중심의 HMGMA(연산 30만대)를 준공한 데다 앞으로 50만대까지 생산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라 100만대 이상의 현지 생산 거점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HMGMA 가동뿐만 아니라 부품·물류·철강 등 전후방 산업과의 연계를 비롯, 배터리 합작 투자 확대 등까지 나서 미국에서 독자적인 전기차 밸류체인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며 현대모비스는 SUV 전용 대용량 배터리 생산에 나선다.
미국 내 전기차 확장과 글로벌 시장 재편 흐름에 대응하는 전진 기지로도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연간 40만대 판매에 머물렀지만 미국 현지 공장 설립 이후 판매량을 빠르게 늘려 2006년 75만→ 2011년 113만→ 2024년 171만대 등 판매량이 매년 폭증한 만큼 HMGMA를 통한 미국 시장 지배력 강화까지 전망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투자 결정으로 한국과 미국의 경제 활성화가 촉진되고 두 나라 경제협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며 "국내 연관 산업의 성장과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 등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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