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은 1년간 사업실적을 보고해 승인받고 정관 변경, 경영진 선임 등 기업 운영에 관련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다. 기업과 주주가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로 이날만큼은 최대주주, 최고경영책임자(CEO) 등이 직접 의장을 맡아 인사말을 전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설명하며 적극 소통에 나선다.
지난 20일 열린 (주)신세계 주총은 정유경 회장의 승진 후 첫 정기주총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 회장은 평소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만큼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그의 주총 참석 여부가 큰 관심사였다.
신세계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최고가 45만5500원에 달했지만 이후 하락을 거듭해 현재 14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당연히 주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지난해 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주)신세계 계열분리를 선언함에 따라 앞으로의 사업 방향성과 먹거리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된 상황이었다. 주주들은 정 회장이 주총에서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지만 그는 끝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날 주총을 치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사장은 주총에 참석해 주주들 앞에서 수익성 하락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업황에 따른 실적 감소를 자신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 이어 "업의 본질에 집중해 새로운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그동안 부진했던 면세사업의 차별화 전략을 발표했다.
이 사장의 책임경영에 주가도 움직였다. 주총 다음날인 21일 금요일 호텔신라 주가는 전일 대비 1200원 상승한 4만150원에 장을 마감했고 다음주 월요일인 24일은 다시 700원이 상승했다.
이 사장은 언론과 대중이 사랑하는 오너이기도 하다. 내부 행사는 물론 지자체 협업 등 외부 현장도 필요하다면 직접 챙기는 편이라 그가 가는 곳에는 항상 카메라가 따라붙는다. 행사장 입장 전후에는 짧게 포토타임을 가지거나 기자들의 간단한 질문에 답한다. 이때 그가 착용한 패션 아이템들이 완판으로 이어지는 등 매출 상승을 이끌기도 한다. 경제 효과 만점 CEO다.
이날도 돌체앤가바나 블랙 드레스를 입고 살짝 미소 지은 이 사장의 모습이 여러 매체에 실리며 크게 화제가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실적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오너나 대표이사의 작은 행동이 기업 이미지에 심심찮게 영향을 끼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주나 대중과 소통하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28일 열린 더본코리아 주주총회에서 백종원 대표는 그동안의 불통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는 "단순히 매출과 수익을 높여 성장하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잘못 생각한 부분이 많았다"며 "소통이라는 걸 잘 몰랐다.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 귀담아듣겠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원래 이날 주총에 참석하지 않고 산불 지역에 가서 밥을 하려고 했다가 CFO(최고재무관리자)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어디에 끼고 어디서 빠질지 '낄끼빠빠'를 잘하는 것도 CEO의 필수 자질 아닐까.
황정원 머니S 산업2부 차장. /사진=김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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