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라이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과천중학교 교과교실 현장./사진=머니S 강한빛 기자
"한국인들이 유독 어려워하는 게 있어요. 뭘까요?"

정조현 라이키 멘토의 질문이 끝나자 과천중학교(교장 서영희) 교과교실 곳곳에서는 장난기 어린 답변부터 사뭇 진지한 고민들이 쏟아져 나온다. "라면에 김치를 같이 먹지 않는거요.", "맛집 웨이팅이요", "감정 표현하기 아니에요?"


지난 15일 오후 1시, 경기도 과천중학교 교과교실반 올해 첫 라이키 교육 프로그램 현장. 이날은 과천중을 대표하는 1학년 라이키 18명이 처음으로 모였다. 노란 체육복을 입고 교실을 채운 학생들은 긴장한 듯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대학생 멘토를 응시했다.

삼성생명은 생명의전화와 함께 마음이 건강한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해 '라이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라이키(LIKEY)는 'Life Key for Friends(라이프키포프렌즈)'의 약자로 청소년들이 빡빡한 학업 속에서 친구의 마음과 건강을 지키고 교내에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시키는 활동을 하는 '청소년 리더'를 의미한다. 곳곳에 흩어져 희망의 꽃을 피우는 민들레 홀씨 같은 셈이다.

라이키들은 이날부터 6월까지 대학생 멘토에게 '마음보호훈련(HSB)' 교육을 듣고 7월부터 9월까지 자신의 학급에서 본인이 멘토가 돼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잘할 수 있죠?" 대학생 멘토의 말에 "내가 진짜?", "신난다"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마음보호훈련은 보호요인 강화를 위한 자살예방 교육 모델로 범세계적으로 인증된 프로그램이다. '3단계 도움찾기 과정'을 익히며 개개인의 정신건강 보호요인을 강화하는 훈련이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연습과 감정 문해력은 물론 또래 간 정서적 유대를 강화하는 걸 목표로 한다.

'첫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떨려요'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제공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감정표현'을 할 건지 도움요청행동 단계를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 도움을 요청하는 언어와 방법을 체득하도록 한다.

모든 과정은 디지털 기반 게임방식으로 이뤄져 라이키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감정을 표현하도록 했다. 서로의 감정에 '좋아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할 수도 있고 매일 자신의 감정상태를 표현하고 친구들과 도움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도 더했다.
마음보호 훈련 중인 학생./사진=강한빛 기자
삼성생명이 청소년들의 감정표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하면서다. 청소년들의 극단적 선택은 2020년 이후 매년 10대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생명의전화와 함께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홀로 싸우는 청소년이 없도록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과천중 라이키 수업을 총괄한 정현이 상담복지사는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라이키부심(라이키+자부심)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자신들의 활동과 역할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처음에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어려워하지만 게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신과 친구들을 알아가는데 뿌듯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라이키에서 배운 꿈… "매일매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왼쪽부터)지난해 라이키 활동에 참여한 고윤서 학생, 최연 학생./사진=머니S 강한빛 기자
"못 본 사이 키가 더 자랐네" 성도광 라이키 멘토의 말에 체육복을 입은 두 학생이 꺄르르 웃으며 인사한다.

삼성생명은 매년 전국 우수 라이키를 선발해 모든 라이키가 모이는 '삼성CSR캠프'를 연다. 과천중 2학년 고윤서, 최연 학생은 지난해 학교를 대표해 캠프에 참여, 교육부 장관상도 수상했다.

두 학생은 라이키 활동을 하며 키도, 마음도 한 뼘씩 더 자랐다고 한다. 최연 학생은 "라이키 활동을 통해 친구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건 물론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스스로 고민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윤서 학생은 라이키 활동이 꿈의 이정표가 됐다. 고윤서 학생은 "라이키 활동을 하며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며 "사람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장기이식코디네이터가 꿈"이라고 전했다.

최연 학생은 "아직 확실한 꿈이 없다"며 쑥스러워 하면서도 "앞으로도 지금처럼 소소하지만 따뜻하게 일상생활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두 학생은 이내 "라이키 답게!"라며 생긋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