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바이오 벤처 대표의 푸념이다. 기술 개발과 사업 안정화를 위해선 투자 유치가 절실한데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도움은 사실상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해외 업체와 추진하고 있는 기술이전 계약이 체결되기만을 바란다는 그의 눈빛엔 성과 창출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가 섞여 있었다.
투자 유치만 어려운 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냔 걱정도 잇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에만 의약품 관세를 물린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아직은 희망사항에 가깝다. 미국 상무부는 의약품 관세 부과를 위해 사전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관세 영향권에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했다. 셀트리온은 올해 미국에서 판매 예정인 제품에 대해 지난 1월 말 기준 9개월분의 재고를 확보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미국 내 CMO(위탁생산) 시설을 미리 확보하고 필요에 따라 즉시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두 회사 모두 대응책 마련 과정에서 정부 도움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바이오 사업 환경이 변하는 상황에서 정부 컨트롤타워인 '국가바이오위원회'는 되레 영향력 축소 우려를 받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조기 대선 일정 시작 등으로 인해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출범 초기부터 힘을 잃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바이오위원회는 당초 지난해 말 출범 예정이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며 계획보다 늦은 올 1월 출범했다. 불안한 출범과 함께 1차 회의를 진행한 뒤 약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2차 회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앞으로 잡힌 회의 계획도 아직 없다. 국가바이오위원회 관계자는 "회의 안건을 준비하고는 있으나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국가바이오위원회 수장이 계속해서 바뀌는 점도 우려 사항이다. 정책의 연속성은 물론 지원 동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출범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 역할을 맡았다. 이후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원장 역할을 대신했다. 대통령이 공석인 상황에서 두 사람이 권한대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현 상황을 설명하는 사자성어로 '암중모색'(暗中摸索)이 적절해 보인다. 어둠 속 손을 더듬어 물건을 찾는다는 의미다. 막연한 상황에서 해법을 찾아 나가는 기업들의 모습과 겹친다. 기업들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방향을 잡고 사업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정부 도움이 절실하다. 어렵게 출범한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고 어둠 속 빛이 돼 기업들이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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