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오페라처럼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물'을 소재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명하고, 왕이나 권력자가 반드시 지혜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점도 드러냅니다. 현재 한국 사회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죠."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 물의 정령' 초연 개막을 앞두고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음악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차세대 디바' 소프라노 황수미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더 라이징 월드: 물의 정령'은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영어 오페라다. 물의 정령에 홀린 공주와, 왕국의 운명을 바꾸려는 여성 물시계 장인의 모험과 희생을 그린다. 소프라노 황수미가 공주 역을, 메조소프라노 김정미는 장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작품의 배경은 끝없이 범람하는 물로 뒤덮인 어느 왕국. 이곳의 공주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왕실은 공주와 왕국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수소문 끝에 물시계 장인과 제자를 불러들여 물시계를 제작하게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
작곡은 호주를 대표하는 현대 작곡가이자 세계적 음악 출판사 쇼트 뮤직 소속인 메리 핀스터러가, 대본은 호주의 공연예술가 겸 극작가인 톰 라이트가 맡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메리 핀스터리에게 한국의 신화나 전설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았는지를 묻자, "기존 이야기를 바탕으로 곡을 쓰지는 않았다"며 "물시계와 물의 정령 같은 한국적 요소는 담았지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보편적인 스토리텔링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고 답했다.
케이(K)-오페라를 표방한 작품임에도 영어로 제작되고 외국인 작곡가와 연출가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서고우니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이 설명했다.
"'그동안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로 주로 공연되던 오페라를, 지금 사람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언어인 영어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K 콘텐츠라고 해서 반드시 한국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고요. 영어 오페라가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서나가는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작품은 '장인'과 '공주'라는 두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돼 극 전개를 이끈다. 이 같은 여성 중심 서사에 대해 메조소프라노 김정미는 "황수미 선생님과 제가 극의 중심인 건 맞는다"며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두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윗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품에서는 왕과 공주의 관계, 물의 장인과 제자의 관계가 주목되는데, 지혜는 장인에서 제자로, 왕권은 왕으로부터 공주에게로 옮겨가며 결국 나라가 더 평안해진다"라고 덧붙였다.
이 오페라가 지닌 강점에 대해 왕국의 '왕' 역을 맡은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는 "악보를 보면 꾸밈음, 박자, 음 길이 하나하나에 캐릭터의 성격과 인물 간 관계가 탁월하게 녹아 있다"며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세계 초연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고 털어놓은 황수미도 덧붙였다. "사실 메리 작곡가에게 악보를 받고 나서 "나 못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도전적인 작품이었다"며 "그럼에도 연습하며 느낀 점은 '불가능은 없다'는 거였다(웃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더 라이징 월드: 물의 정령'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25일, 29일, 31일 총 3회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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