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중 주인공인 '헤다'가 지닌 억압에 대한 분노, 격정, 고독, 욕망, 냉소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하고 있죠. 그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3일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영애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활동해 왔지만, 배우로서의 목마름이 있었다"며 "50대가 이른 현재 배우로서의 진심을 다해 다양한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캐릭터가 '헤다'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헤다 가블러'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귀족 여성 '헤다'가 결혼 후 사회적 지위와 체면에 얽매여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가며 삶의 권태감에서 오는 내면적인 갈등과 극심한 심적 혼란을 그린 작품이다.
LG아트센터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연극 '헤다 가블러'(연출 전인철)는 7일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 홀에서 개막해 6월 8일까지 이어진다. 배우 이영애를 비롯해 김정호, 지현준, 이승주, 백지원, 이정미, 조어진 등 총 7명의 배우들이 2시간 30분 동안 등·퇴장 없이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친다.
다음은 이영애와의 일문일답.
-'헤다 가블러' 출연을 선택한 이유는.
▶이 작품을 만난 건 운명이다. 10년 넘게 입센의 작품을 번역하신 대학원 은사 김민혜 교수님에게 입센 작품을 하게 되면 '헤다 가블러'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LG아트센터에 교수님과 '벚꽃 동산'을 보러왔다가 LG아트센터 센터장님을 만나 제의를 받았다. 마침 드라마 '은수좋은 날' 촬영도 끝날 때라 냅다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은가.(웃음)
-극 중 '헤다'에 공감하는 면이 있다면.
▶헤다는 모은 것을 다 가지고 누리는 것처러 보이는 상류층 여성이지만, 사실은 '사랑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보통의 인간이다. 이러한 모습은 온갖 풍요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늘 소외에 대한 불안과 제도와 사상에 억눌린 욕망을 안고 사는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50대의 나이로 공감하는 느낌을 '이영애'만의 '헤다'를 통해 감정의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주고 싶다.
-'헤다'를 이해하는 데 어려웠던 점은.
▶헤다의 심리를 쫓아가는 게 수학 문제보다 어려웠다. 120년 전에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적 이슈를 생각하는 여성이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수학은 답이 있지만, 헤다의 심리 변화를 규정할 수 있는 답은 없다. 헤다가 악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외롭고 고립된 평범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내 연기가 반드시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미지수를 관객과 함께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공연 시작 전과 후의 두드러진 변화는.
▶처음엔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연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연습에 임했다. 하지만, 5회의 공연을 거치면서 여유가 생긴 후에는 각각의 무대마다 변주를 주며 연기를 즐기고 있다. 연기 동작과 동선, 관객을 보는 시선, 분장의 정도 등 다양한 변화를 주면 관객의 반응의 차이점을 느껴보려고 한다. 내 안에 잠재된 '헤다' 같은 감성을 끄집어 내며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연극의 매력은.
▶연극은 일회성이다. 무대에서의 모습을 현장에서 복기해서 볼 수 없다. 날마다 연기하는 톤과 패턴도 달라진다. 그래서 연극이 더 힘든 점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게 연극이다. 무대 위의 연기를 통해 작품을 보는 시야가 더 커진 것 같다. 앞으로 연극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장르의 작품을 한다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도 생긴다.
-무대에서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
▶처음엔 현타가 왔다. 연극배우들의 발성은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배우들의 발성과 많이 달랐다. 무대 연기에서 필요한 발성이나 동작에 대해 주변 동료 배우들이 많이 도와줬다. 이를 배워나가며 '헤다스럽게' 내레이션하는 법을 표현하고자 애썼다. 이제는 연기를 하면서 즐길 수 있고, 변주하는 여유도 찾았다.
관객에 전하고 싶은 말과 앞으로의 각오는.
▶'이영애'를 보러 오시는 분도 있겠고, '작품' 자체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을 보러 오는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이 작품은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있어서 많은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다. 또한, 앞으로는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보다 가깝게 소통하는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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