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규모의 배터리 전문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2025’의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전기차 배터리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스1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K-배터리가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전방 시장 침체와 원가 부담,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친 가운데 북미 생산기지 구축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영향이다.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서 모기업의 지원을 받아 유동성 확보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16일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LG화학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10억달러(약 1조3945억원) 규모의 해외 교환사채(EB)를 발행한다. 교환사채는 3년물의 만기 구조로 이자율은 약 2%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교환사채 발행은 2년 전 발행한 교환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이뤄졌다. LG화학은 2023년 7월 LG에너지솔루션 지분 0.77%를 기초자산으로 10억달러 규모 EB를 발행해 전지재료 투자 및 원재료 구매 등에 사용했다. 당시 조달한 교환사채 만기가 내년으로 다가오자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발행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SDI도 최근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자금 확보에 나섰다. 삼성SDI의 최대 주주인 삼성전자는 이 중 33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자회사에 직접 자금을 투입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배터리 산업의 중장기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SK온 역시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SK온의 해외법인에 대한 금전 대여와 차입보증을 제공해 자금조달을 돕는 식이다. 지난해에도 SK이노베이션은 SK온과 포드의 합작사인 종속회사 '블루오벌 SK, LLC'의 ATVM Loan(첨단기술차량제조 대출)에 48억1652억만 달러(약 6조7000억원)의 채무보증을 약속했다.
인터배터리 2025에서 SK온 부스를 찾은 참관객이 양방향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SK그룹은 SK온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까지 단행했다. SK온 지원에 나선 SK이노베이션의 부채가 50조원을 돌파하자 SK그룹은 전사 차원에서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통합한 데 이어 SK온,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 등 3사를 합병했다.


포스코홀딩스도 자회사 포스코퓨처엠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포스코퓨처엠은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대주주인 포스코홀딩스는 지분율(59.7%)만큼 회사에 배정된 신주 100%를 인수할 방침이다. 규모는 5256억원이다.

배터리 업계가 모회사의 지원을 받는 것은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북미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합작법인을 통한 현지 생산 기반 구축과 단독 공장 설립을 통한 생산 능력 확대로 북미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모기업 지원'은 단순한 긴급 처방을 넘어 그룹의 에너지 전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주요 그룹은 배터리와 전력망,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를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규정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 배터리 자회사에 대한 재무 지원은 단순한 자금 이전을 넘어 그룹의 ESG 비전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의 일환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그룹 내에서 배터리 사업의 역할이 커질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1666억 달러(약 22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2030년에는 2891억 달러(약 395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연평균 12%를 웃도는 성장률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