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우동 맛집으로 유명한 오제제가 6월1일 창업 5주년을 맞는다. 김지훈 오제제 대표가 음식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오제제(디자인 김은옥 기자)
"웨이팅 2시간? 11시20분인데?"
가게 오픈 시각인 11시 이전에 미리 줄을 서야 한다는 지인의 말을 무시한 것이 패착이었다. '맛있는 음식'으로 힐링하고 싶다고 해서 추천받은 돈가스·우동 맛집이었다. 후기를 찾아보니 그나마 2시간 웨이팅은 양반이었다. 10분만 더 늦었어도 3시간으로 늘어날 뻔했다.

오제제가 '오픈런' 맛집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는 음식, 합리적인 가격. 사람들은 둘중 하나만 충족해도 한번은 가본다. 둘다 충족하면 단골이 된다. 여기에 예쁜 플레이팅과 괜찮은 인테리어가 추가되면 SNS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친절한 직원, 식약처급 청결이 더해지면 줄을 서야 한다. 지금 서울에서 돈가스와 우동으로 가장 '핫한' 곳은 단연코 오제제다.


오제제는 김지훈, 박상준 두 대표의 고향인 제주도 제주시의 앞글자와 감탄사 '오'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한자로는 제(濟)를 쓴다. '건너다'와 '이루다'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어 '바다를 건너 꿈을 이루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시작은 단순했다. 돈가스가 맛있는 집은 우동이 맛없고, 우동이 맛있는 집은 돈가스가 맛이 없었다. '둘다 맛있는 가게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스물다섯에 상경해 우동 잘하는 형과 음식점을 열었다. 서울시 지도를 펼쳐놓고 무림의 돈가스 고수들을 피해 2020년 6월 서울역 근처에 문을 열었다. 오픈하자마자 입소문이 났고 웨이팅의 역사가 시작됐다. 새벽 4시부터 고기를 손질해도 매일매일 재료가 동날 만큼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었다 싶으면 그 돈을 다시 메뉴 개발에 투자했다. 좀 많이 벌었다 싶으면 새 가게를 냈다. 그렇게 5년 만에 광화문, 신용산, 강남, 스타필드 하남, 마곡 코엑스 등 5개점을 열었고 이제는 90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외식기업이 됐다.
진짜 진짜 기본만 지킨다
광화문 오제제 웨이팅 공간(왼쪽)과 자루우동(위), 특등심돈가츠와 새우튀김. /사진=오제제(디자인 김은옥 기자)
6호 매장인 구의역점 오픈 준비에 한창인 김지훈 대표(32)를 어렵사리 만났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여러 가지로 깜짝 놀랐다. 처음엔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고 몇 마디 나눠본 뒤엔 나이보다 훨씬 어른이라 놀랐다.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를 듯한 앳된 얼굴에서 은퇴를 앞둔 명인들이나 할 법한 진리의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때 자신이 하는 말들이 지금까지 내가 인터뷰했던 글로벌 최정상급 셰프들, 무형문화재 선생님들, 성공한 CEO들이 했던 말과 같은 내용이라는 걸.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제제 돈가스가 대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으냐고 묻자 싱거우리만치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진짜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기본만 지켜요." 그래서 그 기본이라는 게 뭘까. "기본은 당연히 원육이 좋아야 합니다. 좋은 원육을 구한 다음 핏물 등 불순물 제거를 잘해야죠. 밀가루를 최대한 얇게 바르고 계란물도 아주 얇게 바릅니다. 빵가루는 골고루 촘촘하게 입히고요. 이게 끝이에요." 무심한 그의 답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언젠가 만났던 6성급 호텔의 총괄 셰프가 했던 것과 같은 취지의 대답이다. 최고의 요리는 최고의 재료, 최상의 손질, 최소의 기교라고 했던.

"그다음에 가게만의 스타일이 들어가요. 수비드 형식으로 하면 고기가 부드럽지만 씹는 맛은 덜해요. 저온으로 오래 튀기면 부드러운 고기가 되고, 고온으로 빨리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식감이 있는 고기가 돼요. 저는 직원들에게 '정확히 몇분 튀겨라' 하고 정해두지 않아요. 가장 맛있는 시간을 감으로 테스트하라고 해요. 왜냐하면 그날그날 날씨가 다르고 고기의 상태가 다를 테니까요."

이 대목에선 소름이 돋았다. 어느 무형문화재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같은 나무라도 재료마다 부위마다 결이 다르고, 계절마다 날씨가 다르니 손질법도 달라야 한다고 했던 소목장의 말씀.

"하지만 고객들이 오제제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게 '맛' 하나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음식점이 대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 기분 좋게 만들어준 음악, 눈을 즐겁게 했던 그릇 등등. 그래서 음식은 물론 인테리어부터 작은 접시 하나하나까지 모두 직접 챙겼어요."

그저 손재주 하나 괜찮은 청년이 아니었다. 한마디 한마디 생각을 내뱉을 때마다 그는 셰프였고, 장인이었고, 예술가였고, CEO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오제제를 다시 둘러보았다. 오제제는 그 하나로 작은 제주였다. 돈가스는 제주산 돈육, 녹돈 등으로 만들었고 초록빛 우동에는 제주 프리미엄 말차가 들어있다. 베이지색 테이블은 함덕 해변의 모래를 떠오르게 했고 그 위에 얌전히 놓인 검은색 공기는 현무암 돌담을 닮았다. 청귤 슬라이스가 가득 담긴 소바 그릇은 발그레한 화산송이 색이다.

날고 기는 글로벌 맛집들이 매일같이 각축전을 벌이는 서울에서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건 김 대표의 남다른 감각과 경영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제제가 SNS에서 인기를 얻으며 잡지들의 러브콜을 받던 때가 2022년 무렵이니 2년도 안 돼 궤도에 오른 셈이다.

"거짓말 안 하고 가맹 문의를 300건 이상 받은 것 같아요. 해외 진출도요. 매장이 2개로 늘어난 시점부터 프랜차이즈로 오해하고 연락을 많이 주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맹 사업은 좀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한 다음에 고민해볼 것 같습니다. 제 준비 부족으로 가맹점주들이 리스크를 떠안으면 안 되니까요. 대신 해외 진출은 검토하고 있습니다. 8월쯤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행' 아닌 '1등' 브랜드 만들고파
순서대로 오제제 마곡 코엑스점 외부와 내부 전경, 강남점 바 테이블./사진=오제제(디자인 김은옥 기자)
6월1일은 오제제가 5주년을 맞는 날이다. 김 대표는 오제제가 5년 동안 잠시도 머물러 있었던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같은 메뉴라도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지속했고 고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려 인테리어, 그릇, 메뉴판 디자인 등 시각적인것 또한 때마다 업데이트했다.

"유행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진짜 1등 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요즘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품질이 상향 평준화됐어요. 누구나 60점까지는 금방 도달합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예요. 60점 이상부터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흐르거든요. 한 포인트 올리는 게 아주 힘들어요. 저는 장인이 되려면 한달에 0.1포인트라도 올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1년이면 1점이니 20년 뒤에는 80점은 될 수 있는 거죠. 만약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0.2점씩 올렸다면 100점도 될 수 있는 것이고요."

눈을 반짝이며 내일을 이야기하는 청년의 말에 오제제의 20주년, 30주년이 절로 그려졌다. 마지막 말은 더 멋졌다. 사세 확장에 대한 방침을 묻는 말에 그의 답은 이러했다.

"무분별한 확장보다는 직원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 투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들이 오제제를 혼자서 운영할 수 있도록 키운다는 생각으로요. 매장을 오픈할 때는 한명이라도 더 고용하려고 합니다. 4명이 할 일을 5명이 하면 고객들한테 더 많이 웃으며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고객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은 더 소중하다고 했다. 고객에게는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직원들에게는 즐거운 일터를 만들어주는 게 대표의 일이라고. 비싼 월세를 부담해가며 매번 역세권에 매장을 여는 건 고객이 찾기 쉬워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직원들이 출퇴근하기 편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배울 것이 있는 선배,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른. 점점 진짜 어른을 찾기 힘든 세상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