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제2후판공장. /사진=포스코
한국 제조업의 근간인 '철강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지난해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1제강·1선재 공장을 폐쇄한 데 이어 최근 현대제철과 동국제강도 철근공장을 멈췄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철근 생산라인을 전면 중단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철강산업의 부진은 수요 침체와 중국산 공세 때문이다. 국내 철근 수요는 급감한 반면 중국산 저가 철강재는 무차별적으로 밀려들고 있다.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정상적인 경쟁이 불가능하다. 일시적인 침체가 아닌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


미국의 통상 압박도 위기를 키운다. 지난 3월 미국은 한국 철강에 무관세 수입쿼터를 폐지하고 25% 관세를 부과했다. 이달부터는 관세율을 50%까지 올릴 방침이다. 글로벌 고금리, 중국 부동산 침체까지 겹치면서 철강 수요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철강 수요 감소는 철강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철강은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등 주력 제조업의 기반이다. 철강이 흔들리면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수출 경쟁력이 악화하고 생산라인이 멈추며 일자리가 줄어드는 연쇄 반응이 이어진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철강산업은 현재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시장 상황은 급변했지만 정부 정책은 과거 틀에 머물러 있다. 철강을 살릴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철강의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다. 중국산 저가재가 무방비로 유입되는 구조를 방치하면 국내 철강업계는 버티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환경 기준, 품질 인증 등 합리적인 비관세 장벽을 활용해 수입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싼 가격에 저품질 철강재가 쏟아지면 피해는 기업을 넘어 소비자, 국가경제로 확산된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에너지 정책도 재설계해야 한다. 고로(용광로) 중심이던 철강 생산이 전기로 방식으로 옮겨가는 것은 탄소중립 시대에 발맞춘 행보다. 전기요금 급등으로 전기로 제강사들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동국제강은 이례적으로 야간 조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예측 가능성, 안정성도 부족하다. 요금이 급등락을 반복하면 기업은 장기 투자를 계획할 수 없다. 전기료를 낮춰 달라는 것이 아니다. 철강업계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친환경 전환을 위한 투자 지원은 선택 아닌 필수다.

위기 속에서 한국 철강은 새로운 대통령을 경제 수장으로 맞았다. 국가 운영의 방향타를 새로 쥔 정부는 철강산업부터 다시 바라봐야 한다. 말로 만든 정책은 기대를 낳지만 실행된 정책은 산업을 살린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더 이상 방법은 없다.
최유빈 머니S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