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사진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떼를 끌고 북한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현대그룹 제공
1998년 6월16일 오전 9시6분쯤 50여대의 트럭에 나뉘어 실린 소 500마리가 판문점을 넘어 북쪽을 향했다. 그 선두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있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2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소 팔아 소 보낸다'… 정주영 회장, 북으로 향한 이유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 군사분계선을 모두 넘은 것은 오전 9시21분쯤이었다. 이어 오전 10시쯤 정주영 회장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소가 실린 트럭에는 "나는 소를 몰고 왔습니다"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정주영 회장의 이른바 '소떼 방북'은 단순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선 행보였다. 그가 북한으로 향한 이유는 명확했다. 어린 시절 강원도 통천에서 자란 정 회장은 17세에 부모님 몰래 소를 팔아 상경했다. 훗날 정 회장은 이때를 떠올리며 "소 한 마리를 몰래 팔아 서울로 와서 돈을 벌었으니 이제는 천 배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남한 경제가 휘청이던 시점 정 회장은 민간 차원에서 남북 간 신뢰 회복과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겠다는 실천적 결단을 내렸다.
1998년 6월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사진은 1998년 6월16일 소떼 방북을 앞두고 서산농장에서 키운 통일소를 끌고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1000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 더"… 소떼가 건넌 평화의 길
이날 북한으로 전달된 소 500마리 중 상당수는 임신 중이었는데 정 회장의 지시로 '통일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담아 선별된 것이었다. 북측도 정 회장의 행보에 주목하며 극진히 맞이했고 소들은 개성 인근 축산시설로 이동해 사육됐다. 이 장면은 국내외 언론에 실시간으로 보도되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떼 방북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 27일 소 501마리를 이끌고 다시 북으로 향했다. 두 차례에 걸쳐 총 1001마리의 소가 전달된 셈이다. 정 회장은 2차 소떼 방북에서 "1000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를 더 보태자"고 제안했고 501마리를 보내며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정 회장은 2차 방북에서 북한 측의 선 제안으로 김정일과 만나기도 했다. 외부 인사를 만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김정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은 한층 속도가 붙으며 빠르게 진전됐다. 이를 통해 많은 실향민이 북한의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또 남북 정상회담과 개성공단 추진으로 이어지는 상징적 출발점이기도 했다. 북한은 정 회장의 방북을 "동포애의 지극한 실천"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노동신문은 그를 "기업가의 탈을 쓴 애국자"라고 소개했다.

정 회장의 소떼 방북은 민간이 나서 국가 간 대화를 유도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정부가 아닌 개인이,권위가 아닌 진심이 남북을 연결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비록 정 회장은 염원하던 통일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2001년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소떼 방북'은 경제인으로서 이익을 넘어 한 민족의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