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심아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비범한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특히 인간 본연의 욕망, 사회적 불평등, 개인의 고뇌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탁월한 서사 능력으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새 소설집 '안녕, 우리'는 선악의 회색지대에 위치한 존재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흠결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서 더욱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와 공감을 준다.
심아진은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흡입력 있는 문장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물론, 현대 사회의 중요한 이슈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그의 일상에 대한 궁금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안녕, 우리'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완벽함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 존재의 완벽하지 않은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단편들을 모은 것이다. 흠결을 지닌 여러 인물을 만날 수 있다. 핍박받는 외국인 노동자 '레이',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남자 등 사회가 요구하는 '올바른 사람'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날 것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책 대표 제목인 '안녕, 우리'는 좀 난해하던데.
▶이 작품이 '청춘'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흔 직전 중년 아저씨들이 그리운 청춘을 분석해 보는 이야기인데, 형식적인 새로움을 주고자 '청춘'이라는 보이지 않는 친구를 등장시키는 시도를 했다. 이러한 구도가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했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 이러한 시도들이 꽤 있다.
-작품마다 이야기 전개가 스펙터클하지는 않은 듯하다.
▶우리 주변엔 온통 스펙터클한 서사를 다룬 것들로 가득하다. 드라마, 영화, 유튜브 영상, 심지어 게임까지 그러하다. 내 소설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매체가 다를 수 없는 부분으로 침투한다. 물론 소설 본연의 서사가 있고 서스펜스가 있다. 그러나 사건의 속도감 있는 전개, 줄거리만 즐기려면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낫다. 내가 추구하는 문학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다. 당장 잡히지는 않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무언가'를 겨냥한다.
-사건의 전개보다는 어떤 현상을 무심하게 그려내는 점이 돋보인다.
▶그렇다. 뭔가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과 생각을 통해 세상에는 옳고 그름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커피와 하루'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 5명은 저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드러낸다. 그 5명이 4명, 3명, 2명, 그리고 마지막 한 인물로 좁혀지는 동안, 누구라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누가 더 옳거나 그르거나가 아니라, 관계에 따라 더 강하거나 약해지고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게도 되는 양상을 그렸다.
-심아진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의 기능은 무엇인가.
▶기능적으로 스토리만 전달하는 것은 다른 매체로도 가능하다. 문학은 여기에 예술성이 스며들어 간 '창조'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창조'라는 단어는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조이스의 등장 이후로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통해 사유를 확장하는 게 문학의 기능이라 생각한다. 상상력으로 풍성해질 수 있는 놀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곳곳에 인물, 상황, 대사 등을 치밀하게 배치하는 편이다.
-'내가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어릴 때 친구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가 이탈로 칼바노는 '세상에 대한 무거움, 무기력함, 불명료함 등은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경우 곧장 글쓰기에 달라붙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책 읽는 것, 글을 쓰는 것으로 예민한 기질을 다스렸다. 작가의 길을 걷다 보니 놓친 것도 많지만, 결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웃음)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세상을 하나로 단정 짓고 이분법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무지개가 딱 일곱 가지 색깔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색이 스펙트럼에 들어 있듯이 이 세상 역시 무수히 많은 색깔과 생각과 사연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의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좀 더 융통성 있고 폭넓게 포용하며 다양한 색깔을 보기 바란다. 그러면 수많은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신념이 거짓보다 더 무서운 진리의 적이다'라고 말한 니체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작가가 되는 여정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나 인물이 있다면.
▶어릴 적부터 다양한 독서를 했고, 대학 때는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문학의 세계를 두루 섭렵했다. 좋아하는 작가도 무척 많다. 그런데 만약 무인도에 갈 때 딱 한 권을 들고 가야 한다면 단연코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를 꼽겠다. 미완의 작품임에도 그 안에 문학의 모든 기법과 인생관이 다 들어 있다. 이 작품을 보며 독자를 끌고 가는 법(스턴은 절단 신공의 귀재다)이나 슬픔에 유머의 양념을 치는 법, 그리고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에 작품의 소재는 어디서 얻는지 궁금하다.
▶최근 대학에 강의를 많이 나가는데,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이 질문이다. 물론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많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얻은 소재를 전혀 다른 그릇으로 옮겨 평소 하고 싶었던 생각을 담아 이야기를 만든다. 있는 이야기 그대로는 재미가 없다. 전혀 다른 환경을 배경으로 삼고 전혀 다른 캐릭터를 입혀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동화 작품도 많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소설가로 오롯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심적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쓰게 된 글이 동화다. 그런데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가벼운 인사'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여 출간이 예정돼 있다. 지금까지 동화는 6권이 나왔고, 7번째 책도 출간될 예정이다. 주력은 소설이지만, 병행해서 동화 작품 활동도 계속할 생각이다.
-'심아진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제맛인가.
▶내 소설은 휙휙 읽어나가기보다는 문장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주면 좋겠다. 모든 문장과 대사가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데 필요한 정교한 장치이자 플롯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유념해 작품을 감상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왕왕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 일상적인 일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중에야 연관성이 드러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은근한 쾌감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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