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기자는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고 했다. 진열대에 있는 한 마스크 포장지에 '멜트블로운(MB) 필터'라는 문구가 있었다. 뜻이 궁금해 계산대에 물어봤다. 종업원은 잘 모르겠다며 약사에게 물었다. 돌아온 말은 "마스크에 있는 소재다"라는 대답이었다.
기자가 의약품 이름 중 영어가 많냐고 묻자 종업원은 많다고 대답했다. 약 성분이 대부분 영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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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검색해 보니 외국어 이름이 상당수━
상품명이 외국어로 도배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단순히 이름이 영어인 게 문제가 아니다. 처음 이름을 듣고 무슨 제품인지 알 수 없는 게 외국어 작명의 문제다.
심지어 품절을 솔드아웃(Sold out)이라고 표기했는데, '솔드아웃'은 '품절'보다 음절도 길어 효율로 봐도 우리말로 쓰는 게 공간을 더 절약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직원들은 복잡한 작명을 제대로 이해할까. 올리브영 직원에게 '아토덤 인텐시브밤'이라는 제품의 뜻을 물어봤다. 직원은 이름의 뜻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면서, 보습 크림의 일종이라는 대답했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제품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소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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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이 왜 다 영어죠?━
메뉴판을 보던 손님은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 네이버 파파고를 켰다. 영어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에게 영어 메뉴판은 불편만 준다. 카페에 영문 메뉴판만 있는 이유를 묻자 직원은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12조 3항에 따르면 광고물은 한글로 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외국 문자로 표기할 경우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
간판에 외국어만 쓰면 불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건물 4층 이하에 설치되는 5㎡ 이하 간판들은 허가·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처벌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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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순화가 꼭 필요한가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우리말 순화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표현하지 않는다고 사회에 영어를 못 쓰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라며 "한국 사람은 한국어로 생각하고 대화하기 때문에 모두가 알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대답했다.
이 대표는 또한 "외국어와 외래어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며 "외래어는 컴퓨터, 피아노같이 외국에서 넘어와 한국어로 대체할 수 없어 굳어진 단어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말에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가 포함되어 있으며 순화해야 하는 건 과도한 외국어 사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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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관련 용어 반드시 쉬운 말 사용해야━
간판이나 메뉴판에 한국어를 표기하지 않는 문제는 한국인의 정체성도 직결된다. 이 대표는 "도시에 외국어로만 된 간판이 많아진다면 도시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권리 측면에서도 한글 없는 간판은 부적절하다. 이 대표는 "일본어로만 된 간판을 쓰는 가게들이 많이 생겼는데, 검색해서 해당 위치에 갔지만 일본어를 몰라 가게를 못 찾는 경우도 있다"며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외국 용어가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외국어를 계속 쓰게 되면 고착화된다고 했다. 그는 "데이터의 경우에도 자료라는 우리말을 쓸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데이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져 순화가 어렵다"면서 "R&D(연구개발) M&A(인수합병) 같은 한 번에 알기 어려운 단어는 처음부터 쉬운 말로 순화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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