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는 국악을 유산이 아닌 힙한 콘텐츠로 즐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소비한다. 사진은 길거리에서 전통 연희 놀이를 체험 중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남동주 기자
"국악이 요즘 왜 힙해졌냐고요? 그냥 멋있어서요."

전통 예술 국악이 Z세대의 손끝에서 전혀 다른 얼굴로 태어나고 있다. 판소리는 클럽 사운드 위를 흐르고 사물놀이는 길거리에서 펼쳐진다. Z세대는 국악을 '설명해야 할 유산'이 아니라 '그냥 즐기면 되는 콘텐츠'로 받아들이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국악과 거리, 클럽, 댄스를 넘나드는 예술가들이 있다. 기자는 박애리·팝핀현준 부부, 이날치 보컬 최수인, 안대천 더광대 대표 등을 만나 힙한 형태로 변모한 국악에 대해 물었다.
"판소리는 '뱉는 말'이에요. 그래서 귀에 꽂히죠" … 박애리·팝핀현준 부부가 말하는 전통과 힙합의 공존
박애리·팝핀현준 부부는 국악과 힙합을 진심으로 엮어 Z세대와 소통하는 무대를 만든다. 사진은 공연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 /사진=박애리 제공
"우리는 무대에서 국악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주면 관객이 알아서 느낀다."

소리꾼 박애리와 스트리트 댄서 팝핀현준은 국악과 현대 예술을 조화롭게 연결해 온 대표적 아티스트다. 두 사람의 협업은 2011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결혼식 겸 공연 '그와 그녀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무대는 공연기획자와 방송 PD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부부의 무대는 방송과 해외 공연으로 이어졌다.

박애리씨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뛰다 튀다 타다' 무대에서 처음 팝핀현준씨와 함께했는데 당시 국악과 힙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이어진 공연은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전통을 요즘 감각으로 즐긴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두 사람은 작업 과정에서 전통과 현대를 단순히 섞기보다 각자의 예술성을 '그대로 존중'하며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 박애리씨는 "현준 씨는 내 소리에 춤을 붙이고, 나는 그가 만든 리듬에 소리를 얹는다. 각자의 예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하나의 무대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팝핀현준씨는 "국악은 처음 접했을 때 박자도 감도 안 잡히고, 춤추기 어려운 리듬이었다"며 "몸으로 익히며 리듬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춘향가 완창을 처음 관람했을 땐 "6시간 공연이었지만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소리의 서사와 감정이 관객을 몰입시킨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국악을 현대적으로 전하는 데 있어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를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팝핀현준은 "전통을 전하려면 본질을 알아야 하고, 현대를 반영하려면 지금의 감각을 이해해야 한다. 단지 예쁘게 섞는 게 아니라, 진짜 융합은 그 깊이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Z세대의 반응도 이들에게 특별하다. 박애리는 "Z세대는 좋으면 즐기고, 싫으면 바로 표현한다. 국악도 이제 그렇게 자유롭게 감상 되는 예술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진심을 다한다. 누군가 우리 공연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면, 우리는 그걸로 충분하다. 웃든 울든 눈물이 나든 마음이 움직이면 그게 국악의 가치"라고 말했다.
"국악이 힙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멋지게 만든 거죠" … 이날치 보컬 최수인이 말하는 국악과 Z세대의 접점
이날치는 Z세대 감각으로 전통의 힘을 꺼낸다. 사진은 공연 중인 이날치의 모습. /사진=최수인 제공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공개됐을 당시 사람들은 "이게 국악이야"라며 놀라워했다. 베이스와 드럼 위로 판소리 보컬이 흐르는 음악은 기존 국악의 틀을 완전히 깼다. 그러나 이날치의 보컬 최수인은 이 현상을 "사실 국악은 그 자체로 힙하지 않다. 다만 전통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요즘 감각으로 꺼내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치의 정체성을 "국악 밴드가 아닌, 팝 밴드"라고 규정한다. 그는 "우리는 국악을 베이스로 한 팀이 아니다. 각자 자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고 보컬이 판소리를 전공했을 뿐이다. 그 경계가 유지될 때 음악의 맛이 살아난다"고 이야기했다.

이날치는 음악 속에서 판소리를 억지로 '리믹스'하지 않는다. 오히려 "판소리 본연의 미감을 유지한 채 대중음악의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판소리의 기술 몇 개를 따오거나 편집하지 않는다. 판소리는 판소리 그 자체로 존재하고, 세션은 세션대로 살아 있다. 그게 이날치 음악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창작하는 방식에 대해 "꼭 무엇을 덜거나 더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전통은 전통대로의 결이 있고 그 안에 이미 충분한 힘이 있다"며 "우리 감각을 믿고 그 위에 자연스럽게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Z세대의 공연 태도에 대해서도 인상 깊다고 표현했다. 그는"클럽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 젊은 세대를 가까이서 자주 마주친다. 이들은 공연 중간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자기 사진을 찍거나, 무대 위로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데 그게 의무감이 아니라 자기표현"이라며 "원래 추임새도 그러하니 오히려 그게 더 국악스럽다"고 전했다.

최수인은 Z세대가 국악을 '힙하게' 느끼는 배경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요즘 세대는 레트로 같은 오래된 가치에 끌리는 감각이 있다. 국악은 그 유산의 정점"이라며 "바뀔 수 없는 가치, 수백 년을 이어온 무게 그런 것들이 지금 Z세대에겐 멋으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음악을 통해 꼭 뭔가를 전달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그냥 재밌었으면 좋겠고 듣고 신나면 된다. 우리가 고민하면서 만든 이 곡들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듣는 사람에게는 그저 즐거운 음악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
"국악은 무대에서 내려와야 진짜 살아납니다" … 거리의 광대, 안대천 대표가 말하는 '버스킹 국악'
거리에서 관객과 호흡할 때 국악이 살아난다고 이야기하는 더광대. 사진은 길거리에서 공여나는 더광대의 모습. /사진=남동주 기자
"국악은 무대 위 예술이 아닙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진짜 살아나요."

안대천 더광대 대표는 국악을 '현장에서 숨 쉬는 예술'이라 말한다. 그에겐 판소리나 풍물놀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서 이뤄지는 '직접적인 교감'이다.

더광대의 국악 공연은 무대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펼쳐진다. 누구든 멈춰서서 볼 수 있고,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예전엔 공연장에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연령대가 높았지만 지금은 젊은층, 가족 단위, 외국인 관객까지 다양하다"며 "공연 중 관객의 반응이 억지 호응이 아니라 진짜 '찐' 반응으로 확달라졌다"고 말했다.

Z세대의 반응에서 국악이 '힙하다'는 평가를 직접 체감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MZ세대 관객은 반응이 솔직하고 직관적이다. 이전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박수만 치던 관객이었다면 요즘은 웃고 울고 박자에 맞춰 몸도 흔들며 큰 호응을 보여준다. 덕분에 더 즐겁게 공연하게 되고, 피드백을 통해 콘텐츠도 계속 진화한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더광대는 공연 현장에서 청소년, 가족, 외국인 관객과 직접 교감한다. 악기를 만져보게도 하는 등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그는 실험적 무대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안 대표는 "장소나 관객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공간이든 국악은 그 공간의 공기와 관객의 눈빛에 따라 다른 감정을 만들 수 있다. 국악의 진짜 매력은 그 생동감에 있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는 판소리를 무릎을 치며 듣지 않는다. 대신 이어폰을 끼고 출퇴근길에 듣거나 SNS에 공연 후기를 남기고 공연장에서 추임새를 직접 외친다. 이들은 '전통을 계승하자'는 의무감 대신 '이게 좋아서' 국악을 소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