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채무조정 기구 배드뱅크를 설립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무담보채권(신용대출)을 소각한다. 대출자 약 113만4000여명이 대상이다. 채무에 비해 상환능력이 부족한 경우 원금을 최대 80% 감면하고 분할상환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채무조정도 이뤄진다.
정부가 배드뱅크에 투입하는 재원은 약 8000억원이다. 연체 채권 규모인 16조4000억원에 평균 매입가율 5%를 적용한 값이다. 4000억원은 2차 추경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4000억원은 금융권이 출연한다. 정책 수혜자는 113만4000명으로 전체 개인 차주 약 2000만명의 5.6% 수준이 될 전망이다.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을 관행처럼 반복됐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신용회복위원회를 설립했고 노무현 정부는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활성화하며 채무자의 회생을 지원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마음금융과 희망모아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 취약계층을 지원했고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출범해 장기연체자의 재기 기반을 마련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새출발기금을 도입했다.
이재명 정부의 채무조정 규모는 역대급이다. 정부는 장기소액 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과 소상공인의 빚 16조원 탕감한다는 방침이다. 최대 정책지원으로 기록된 2000년 농가부채 탕감(17조5500억원) 규모와 맞먹는다. 빚 탕감 대상도 확대됐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으로 49만명, 2022년 문재인 정부 새출발기금은 13만명의 빚을 탕감했다. 이재명 정부의 채무조정 대상은 143만명으로 과거 정부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는 퍼주기식 탕감 정책에 국가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는 900조원을 넘어섰다. 1년 새 125조4000억원가량 늘어난 규모다. 급전이 필요한 정부는 지난 6월 한국은행에서 17조90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잇따른 빚 탕감에도 취약 차주의 채무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취약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2.24%로, 2013년 2분기 말(13.5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3.92%로 2015년 3분기 말(4.60%) 이후 10년 만에 가장 수준을 기록했다. 저성장 위기 속에 '빚 안 갚고 버티면 정부가 탕감한다'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빚 탕감 정책으로 경제활력을 높이려면 채무조정 대상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023년 한국의 전체 고용 중 2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7번째로 높다. 빚을 탕감받고 다시 빚을 내서 사업하는 악순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업교육·구직 지원 프로그램을 병행해야 한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이 연체자 신분에서 벗어나 새출발할 수 있도록 신용정보법도 손질해야 한다. 신용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채무자의 연체정보는 신용정보원 시스템에 7년간 보관했다가 삭제되는데, 이번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신용정보원 '공공정보'에 재등록된다. 금융회사가 채무조정을 받은 채무자에게 또다시 '신용 낙인'을 찍지 않도록 신용정보법 정비가 필요하다.
새 정부의 배드뱅크가 단순히 부채정리기관이 아니라 빚에 허덕이는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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