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협치 1호 경제법안으로 꼽히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제22대 국회 상법 개정 관련 주요 조항 내용. /그래픽=김은옥 기자(머니s)
여야 협치 1호 경제법안으로 꼽히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와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주식시장도 강세다. 지난 1일, 개정안 처리 임박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요 그룹 지주사들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이번 개정안이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경영계 반응은 정반대다. "기업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반발과 함께 경영 자율성 위축, 소송 리스크 증가, 의사결정 지연 등의 우려를 표한다. 기업들이 반발하는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쟁점 ①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배임 리스크 커진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명확히 규정했다. 사진은 이춘석 법제사법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이에 기업들은 "주주 개개인의 이익을 모두 고려해야 하느냐"며 우려한다. 주주가 대주주와 소액주주는 물론,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나 적대적 M&A 세력까지 다양한 성향으로 구성돼 있어 의사 결정이 지연될 수 있고 경영상 판단이 사후에 특정 주주 이해관계에 따라 '배임'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장된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2005년 시행된 증권집단소송법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실제 제기된 소송 건수는 단 16건에 그친다. 연평균 1건이 되지 않았다.

충실의무는 총수 일가나 경영진의 사적 이익이 일반 주주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제한적 개념으로 국제 기준과 부합된다고 했다. 미국은 이사가 주주에 대해 직접 충실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하며 영국·독일·일본 역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경우 주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오기형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도봉구을)은 "주주가 경영에 대해 질문하거나 감시하는 걸 두고 '경영권 침해'나 '투기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며 "주주는 회사의 성과에 책임을 지고 그에 따라 이익을 공유하는 주체인데 경영에 목소리를 낸다고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건 잘못된 인식"이라고 했다. "상법 개정안에서 말하는 '이사의 주주 보호 의무'는 이런 시각을 바로잡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쟁점 ② '전자주총 의무화' 비용·보안 부담 크다
소액주주들에게 실질적인 의결권 행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는 앞으로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3월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주총장에 입장하기 위해 주주확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소액주주들에게 실질적인 의결권 행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앞으로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기업들은 "보안 문제, 시스템 구축 비용 등 부담이 적지 않다"고 호소하지만 투자업계는 "전자주총은 미국서도 보편화된 제도여서 국내에서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두고 제도화를 추진하는 만큼 지나친 우려다"라고 반박한다.

전자주총 시스템은 초기 도입비가 필요하지만 인쇄·우편·현장 총회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오히려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주주들의 출석률을 높여야 하는 기업에겐 전자주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자주총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확산됐다. 글로벌 주총 플랫폼 기업 브로드리지(Broadridge)는 미국에서 전자 플랫폼으로 온라인 주총을 개최한 건수가 2019년 248건, 2020년 1494건, 2021년 1929건이라고 집계했다.

투자업계는 이번 상법 개정안에서 전자주총 의무화 대상 기업을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약 200개사)로 제한하고, 시행 시점도 2027년 1월1일로 유예돼 기업들이 기술적·제도적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보안 사고나 시스템 오류에 대비한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시스템 장애로 전자투표 참여가 제한된 경우 해당 주주의 권리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별도의 구제 절차 등이 법률로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손종원 한국 ESG평가원 대표는 "이번에 도입되는 전자주총은 정확히 말하면 '혼합형 주총'(하이브리드 주총)"이라며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원하는 주주는 현장에 참석해 오프라인 주총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병행 운영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자주총 시스템을 갖추는 데 초기 인프라 구축 비용이 들 수는 있지만 미국처럼 전자주총이 보편화되면 관련 산업이 형성돼 비용이 과도하게 들지 않을 것"이라며 "보안이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장치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마련돼야 할 사항"이라고 짚었다.
쟁점 ③ '3%룰'로 투기자본이 경영권 흔든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감사위원 선임 시 '합산 3% 룰'의 도입이다. 사진은 지난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간사인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회동 결과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이번 개정안 핵심 쟁점 중 하나인 감사위원 선임 시 '합산 3% 룰'의 도입도 관심이 높다. 기존에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의결권 3% 제한이 개별로 적용됐지만 개정안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 전체를 합산해 3%까지만 인정한다. 최대주주가 가족이나 계열사를 동원해 감사위원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다.

경영계는 "소액주주 연합이나 투기자본이 감사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다"며 경영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위원 3인(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회사에서 감사위원회는 필수로 둬야하고 최소 3인 이사의 이사로 이루어져야 함) 중 분리선출 대상은 1인에 불과하다. 사외이사든 사내이사든 감사위원 후보군 자체가 최대주주 의중 아래에서 정해지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이번 3% 룰이 최대주주 경영권 행사를 제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관측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개정안에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범위 확대(현행 1인에서 2인 또는 전원) 등을 함께 담았으나 국민의힘과 경영계 의견을 받아 들여 이번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경영 투명성과 주주권 보호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는 평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3% 룰 도입은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선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견제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선언적 시그널로 볼 수 있다"며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후속 제도들이 뒷받침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