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그동안 미온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자 뒤늦게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얘기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중구 다동 여신금융협회 회의실. 김은조 여신협회 전무를 비롯해 신한·삼성·KB국민·하나·현대·롯데·우리·비씨카드 등 8개 카드사 디지털 부문 임원들이 마주 앉았다.
회의는 당초 계획에 없었지만 최근 일부 회원사에서 필요성을 제기해 급하게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급하게 준비된 탓인지 스테이블코인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는 카드사는 TF(태스크포스) 회의에 영업부서 임원이 참석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자리가 급히 마련된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사항은 없다"고 전했다.
새로운 결제 시장에 대한 카드업계의 어설픈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여신협회와 카드사들은 카카오 토스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사의 공세에 맞서 QR결제 규격 표준화 서비스를 추진했다. 서비스는 카드사마다 다른 QR코드 규격을 통합한 게 핵심으로 해당 QR규격이 적용된 가맹점도 함께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출범 1년이 지난 현재 여신협회는 서비스 가맹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A카드사 앱에 B카드사의 카드를 등록해 결제할 수 있도록 한 '오픈페이' 역시 마찬가지다. 애플페이 상륙과 빅테크의 공세에 맞서 카드업계가 띄운 연합전선이었지만 낮은 인지도와 지지부진한 성과는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픈페이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씁쓸한 현실을 꼬집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실물 자산에 연동돼 가격이 안정적인 암호화폐다. 현재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POS(포스)단말기로 결제하면 VAN(부가통신사업자)사가 카드사에 결제 정보를 전달하는 구조지만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경우 소비자가 코인을 가맹점에 바로 전송해 실시간 정산이 가능해진다.
결제 가맹점 수수료를 기반으로 수익을 내온 카드사 입장에선 생존 방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변화다.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비자, 마스터카드의 주가가 흔들린 바 있다.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 금융당국 규제 강화 등 외부 악재에 실적이 악화일로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에 대응은 늘 늦었고, 실행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카드업계가 결제 생태계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게 과연 외부의 문제일까.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제때에 노를 들지 않으면 떠내려가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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