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인명사고로 인해 건설업계의 입찰제한, 대출규제, 징벌적 손해배상 등 행정·재정적 제재는 물론 법인 해체 수준의 징계까지 언급되며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야외에서 근무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건설현장에서 반복되는 인명사고에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한 조치를 주문하면서 업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22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규제에 이어서 입찰 제한, 대출 규제, 징벌적 손해배상 등 행정·재정적 제재와 법인 해체 수준의 징계마저 언급돼 비상이 걸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사전에 사고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3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예상할 수 있는 것을 방어하지 않고 사고 내는 것은 죽음을 용인하는 것과 같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징벌적 배상과 고액 과징금, 건설 면허 취소, 대출 제한 등 강경책을 언급하며 각 부처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강화를 강조하며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제한 ▲영업정지 등도 병행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7년 이하 징역,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건설산업기본법은 영업정지, 감점, 최대 무기징역이 가능하다. 국회에는 건설안전특별법도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인명사고가 발생한 사업자에 1년 이하 영업정지 또는 매출의 3% 이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업계는 건설현장이 구조적으로 위험이 높은 데다, 기존 법령에 따라 처벌이 강화되고 있어 추가 규제가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처벌 강화에도 사고는 제자리… 실효적 예방책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중대재해 근절 대책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통령실 통신사진기자단)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대재해 조사 대상 사망사고는 총 129건, 이 중 건설업에서 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산업 중 가장 높은 비중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0.9% 증가한 수치다.

사망자 수도 줄지 않고 있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공능력 상위 20개 건설업체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지난해 35명으로 2023년(28명)보다 증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 해인 2022년(33명)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는 처벌보다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영세업체의 경우 대응 역량이 부족해 과징금과 입찰 제한 등이 치명적인 점도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강제 규제만으로 효과가 제한적이며 예방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에도 사망사고가 줄지 않았다"며 "영국 등 선진국은 대형 건설사가 사전 안전점검을 체계화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안전관리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리감독도 중요하지만 건설 근로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VR(가상현실)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업 근로자도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홍근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현장 감독자가 작업자의 안전교육 이수, 장비 착용 여부를 실제로 점검해야 한다"며 "지키지 않으면 즉시 페널티를 주는 내부 통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도급을 의뢰해도 본사가 안전부문만은 직접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U(유럽연합) 다수 국가에선 산재율이 낮은 기업에 산업안전 보험료 할인이나 세액공제, 안전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예방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규제 중심 정책이 반복되며 산업 생산성 저하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처벌보다 근본 예방의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며 "소규모 현장에 안전관리비를 지원하는 등 기업과 근로자가 각자 책임의식을 가질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