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전세제도 개선안 공청회에서 임대인 A씨의 발언이다. 다가구주택 여러 채를 소유한 주택임대사업자인 A씨는 한 채의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면서 세입자로부터 임차권 등기 신청을 당했다. 임차권 등기가 설정된 주택은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이 어렵다. 그는 "현금 유동이 어려워져 순식간에 연쇄 전세사고를 낼 위기"라며 울먹였다.
2021년 전세사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최소 11명의 젊은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전세사기 담론은 '악성 임대인'과 '피해자 임차인'의 구도로 전개됐다. 관련 대책이 임차인 보호와 피해 회복에만 집중되면서 임차인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임대인을 고소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하지만 파산하는 임대사업자가 속출하며 임대인도 전세사기 사태의 피해자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청회 현장에서 "사기를 친 게 아니라 사고를 겪었을 뿐"이라는 임대인들의 절박한 호소가 쏟아졌다. 고금리 여파와 정부 정책 등으로 시장 상황이 급변하며 역전세(전세금이 매매가보다 높아진 현상)가 발생했고 고의성이 없는 '전세사고'도 이어졌다.
임대인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위변제가 이뤄지면 보유한 모든 주택의 보증보험 가입이 제한되는 점을 토로했다. 사고 이력으로 보증 가입이 막히면 임차인은 계약을 꺼리게 되고, 신규 계약이 안 되면서 보증금 반환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부도덕한 임대인과 무자본 갭투자는 근절돼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수 임대인은 임대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은퇴자 등 중소 사업자들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대출 정책 변동 등에 따라 임차인과 함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임차인 보호라는 대의에는 이견이 없지만 현재의 전세사기 대책은 임대인에게 일방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게 임대업계의 공감대다. 모든 위험을 임대인에게 전가한다면 전세 공급이 위축되고 주거 불안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를 기망하고 전세금을 탈취한 사기 사건과 전세사고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고의 고의성이나 장기간 미납 이력이 없고 보증금 반환 의지를 보이는 임대인에 한해 행정 구제의 통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부동산 업계는 임차인과 임대인 간 협의가 가능한 소통창구를 마련하고 모범 사례에 대해 반환대출 등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분할상환제나 일시 연체를 구제해야 한다. 전세사고 방지 목적의 긴급 유동성 지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세사고 이력이 해당 임대사업자의 전체 주택에 자동 연동되는 현재의 보증심사 기준도 문제가 지적된다. 사고 이력과 무관하게 개별 물건의 리스크를 따지는 심사 시스템의 정교화가 요구된다. 임대인들은 HUG의 보증 한도가 추가 축소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제도 도입의 속도를 조절하고 수요자들이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전체 임대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정책은 사회의 낙인을 조장할 뿐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 시장에 필요한 것은 '가해자 찾기'가 아니라 모두를 지키는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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