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증시를 보면 겉만 부풀고 속은 덜 익은 빵이 떠오른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공약으로 내걸자 증시 안팎에 기대감이 번졌다. 인공지능(AI), 조선, 방산 등의 테마가 주가를 밀어올리고 외국인 자금도 다시 한국으로 회귀하는 듯한 흐름을 보였다.
오븐 속 빵이 그렇듯 겉이 부풀었다고 속까지 잘 익었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의 실적과 생산성, 투자 환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0.99달러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설비투자는 4개월 연속 감소하며 경기 회복 흐름은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는 "미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최근 한미 무역 협상에서 불거진 관세 문제는 미국의 자국 중심 정책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준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이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누려온 무관세·저관세 혜택이 축소되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같은 핵심 수출 산업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생산과 고용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현지 투자와 생산설비 이전이 불가피해졌다. 이 과정에서 기술과 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가고 국내 산업 생태계가 약화될 수 있다.
국내 기업 경영 환경 역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법인세 인상을 비롯해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예고되는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등 잇따른 규제 입법은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를 늦추고 경영 불확실성을 확대한다. 상법 개정안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약화시키고 노란봉투법은 노사 분쟁에서 사용자 부담을 높인다.
결국 지금은 대외·대내 환경이 동시에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 확산, 국내 규제 강화라는 삼중고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과연 '코스피 5000' 시대를 견인할 만큼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빵을 제대로 만들려면 밀가루와 물, 이스트, 온도와 발효의 시간까지 모두 맞아야 한다. 하나라도 빠지면 겉만 그럴듯하다가 식은 뒤 주저앉는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실물경제와 제도 개혁이라는 속 재료가 받쳐주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한 체질 개선 없이 한국 경제를 낙관하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부풀어 오른 그래프가 아니라 그 그래프를 떠받칠 탄탄한 토대다. 지금 진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불편한 진실을 묻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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