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194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월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경주 문화고와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했다.
1982년 운송업체 '영대 운수'를 설립한 이 회장은 1994년 건설업으로 전환하며 사명을 서희건설로 바꿨다. 세 딸의 이름 끝 자가 '희'여서 사명을 서희건설로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 이은희 부사장(52) 차녀 이성희 전무(50) 막내 이도희 미래사업본부 총괄(43)은 모두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세 딸은 서희건설 주식을 각각 0.81%, 0.72%, 0.72% 보유했다.
막내 이도희씨는 검사 출신이며 세 딸의 남편인 사위들도 모두 법조인인 점이 주목된다. 맏사위 박성근 변호사는 검사 출신이자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지냈다.
1999년 코스닥에 상장한 후 초기에 서희건설은 포스코 관련 공사와 지방자치단체 발주 사업을 주로 맡았다. 이후에는 건설업계 틈새시장인 대형 교회와 병원 시공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이 회장은 명성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영산 성전, 청운교회, 광림교회, 삼일교회, 포항중앙교회 등의 건설을 주도했다. 2016년 'CEO의 기도'(서희건설 회장 이봉관 장로의 삶과 신앙)라는 책을 저술했다.
서희건설 성장의 전환점은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이다. 지주택 사업은 무주택자나 1주택자가 사업체를 구성해 토지를 공동 매수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시행하는 방식이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8년 지주택 사업을 시작한 서희건설은 4대강 사업 첫 사업자로도 선정됐다. 지주택 사업 누주 수주액은 10조원 이상이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지주택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매출은 1조4737억원, 영업이익은 2357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장은 김건희씨에게 6000만원 상당의 명품 반 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선물했다는 의혹을 받아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자수서를 제출했다. 김건희특검은 서희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고 현재 주식은 거래 중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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