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수주전이 경쟁사에 대한 비방과 네거티브 선전으로 얼룩지고 있다. 사진은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뉴시스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공사를 수주하려는 목적으로 입찰 경쟁사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선전이 도를 넘고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시공사의 조합원에 대한 금품 수수와 개별 접촉을 금지해 최근에 이 같은 불법 행위가 줄어들고 있지만, 이면에는 허위 사실 유포와 비방성 선전이 규제의 빈틈을 파고들어 공정 경쟁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과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기준'에 따르면 입찰 공고 이후 건설업체와 홍보대행사는 조합원 개별 접촉과 금품 제공이 금지된다. 위반 시 입찰 무효 처리되며 반복 적발 시 퇴출도 가능하다.


2018년 10월부터 정부는 시공사의 조합원에 대한 금품 제공 시 시공권 박탈과 공사비의 20%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등 규제 제도를 강화했다. 국세청도 수주 대행업체의 용역 대가 부풀리기와 조합원 금품 제공 방식의 비자금 조성 사례를 적발해 세무조사와 형사 처벌을 예고했다. 하지만 허위·과장 선전이나 비방, 언론 청탁 등은 입증이 쉽지 않아 제재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조합원 개별 접촉이 금지된 후로 네거티브 선전이 더 늘어났다"며 "대행사가 언론에 청탁해 비방 기사를 유포하거나 전문매체를 인수하는 방법마저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홍보·대관 업무를 의뢰 받은 대행사의 용역 계약은 건당 20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용역 관행이 확산됨에 따라 조합원 사업비와 분담금, 일반분양 분양가 등에 전가되는 문제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선전 횡포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실제 사례들을 보면 2020년 서초 반포3주구 수주전에서 대우건설은 삼성물산을 겨냥해 '또다시 소송 걱정' '갑질 계약서'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걸었다. 올 6월에는 총 공사비 9500억원 규모의 용산정비창 수주 경쟁을 한 포스코이앤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이 상대 업체에 '허위 광고' '기만 행위'라는 비방전을 펼쳤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은 오는 23일 시공사를 선정하는 강남 개포우성7차 재건축 사업의 입찰에 참여해 상대 업체의 부정 행위를 고발하는 민원을 구청과 조합에 각각 제기했다. 조합은 비방·허위 홍보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수차례 보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입찰 공고 후 총회까지 통상 2개월 이상 소요되는 관례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토부 고시는 입찰 공고일부터 마감까지 30일 이상 기간을 두도록 규정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최소 기간'만 지키면 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홍보 활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네거티브 선전이 장기화하고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치르게 된다"며 "적정 시간과 공정한 룰이 정립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총회와 전자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벌점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벌점을 부과하고 자격 기준을 운영해 사업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이미지가 하락하면 다른 사업 수주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최근의 대행사 횡포는 '아니면 말고' 식의 선전이 난무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