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키면 대체 어느 기업이 제대로된 경영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최근 기자가 만난 한 기업 관계자는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다.


주요 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와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 등 외부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쟁의 대상으로 삼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경우 대응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3일 본회의 안건으로 노란봉투법을 상정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게 되면 실제 처리는 24일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의석 수가 압도적인 민주당의 강행 의지가 높고 진보당 등 일부 야당도 이에 찬성하고 있는 만큼 노란봉투법은 사실상 통과된 것과 다름없다는 관측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고 최근에도 "일정을 미루지 않는 게 좋겠다"고 언급하며 조속한 통과에 힘을 싣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해 원·하청 간 직접교섭을 가능하게 하고(2조) 노동자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귀책사유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하는(3조)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시행되면 하청 근로자들은 원청 사업주와 직접적으로 교섭을 요청할 수 있게된다. 기존 사업 철수, 사업장 정리, 해외 투자 등 '사업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파업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더라도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

경영계는 이 같은 법안이 노동계 입장만을 과도하게 대변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지난 18일 국회를 찾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6단체장은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한다면 원청 사업주는 건건이 대응할 수가 없어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질 것"이라며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으면 우리 기업들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경영계는 사용자 범위는 현행법을 유지하고 쟁위 대상에서 사업 경영상 결정은 제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시행시기도 1년을 유예해 그 사이 노사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경영계의 입장이다. 대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액 상한을 시행령에서 별도로 정하고 급여도 압류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국내 재계뿐만 아니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주한유럽상공회의 등 해외 경제단체들도 노란봉투법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법안이 시행될 경우 한국에 진출하거나 투자하는 기업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를 수용하지 않는 채 안건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노란봉투법에 대한 경영계의 우려를 '과장된 것'으로 치부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법안이 개정되면 기업이 다 해외로 갈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런 우려는 과장"이라며 "만약 우려하는 일이 생기면 법을 다시 개정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안일한 인식이다. 소를 잃고 뒤늦게 외양간을 고쳐봤자 떠난 소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기업들이 해외로 떠난 마당에 법을 개정한들, 한번 신뢰를 잃은 한국 시장에 대한 재투자 의지는 예전만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으로의 리쇼어링을 위해선 오히려 더 많은 정책 자금과 유인책을 쏟아내야한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경영계의 우려를 뒤로하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했다가 부작용이 속출하자 결국 부분적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 이후 보완대책 마련 등 속도조절에 나섰으나 이미 인상된 임금은 내려가지 않아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인건비 상승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이 같은 전례를 고려할때 노란봉투법 역시 속도감있는 추진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경영계는 무조건 반대하던 과거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대안을 제시하고 1년의 유예기간 동안 노동계와 협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부와 여당는 이를 수용해 노사정이 함께하는 대화 테이블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