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 셰프. ⓒ News1 김일창 기자


전호제 셰프 = 동네 횟집에는 손바닥 두 개만 한 광어가 차곡차곡 겹쳐 있다. 광어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횟감 중 하나다.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맛이 날로 먹기엔 좋으나 구이로는 잘 먹지 않는다. 서양식 스테이크로는 어느 정도 씹는 감이 있는 육질이 있어야 하는데 광어는 구웠을 때 이런 단단함보다는 부드러운 편이다.


스테이크용으로 1% 부족한 광어

지난주 내 눈길을 끌었던 건 '핼리벗'(Halibut)이라는 생선이다. 한국에서는 수입산으로만 접할 수 있지만 미국, 유럽에서는 단단한 육질을 가지고 있어 고급식당에서 생선요리의 재료로 인기가 많다. 모양은 꼭 커다란 광어처럼 생겼지만 맛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 레스토랑에서도 코스요리 재료로 빠지지 않는다. 올리브오일을 뜨겁게 해 천천히 그 안에서 익혀내기도 하고 프라이팬에서 구워내기도 했다. 생선의 두께가 손가락 1마디 정도가 되니 속까지 익도록 한다. 기름기가 적은 담백함으로 건강에도 좋고 단단하면서 촉촉함이 살아 있다.


기름기가 적고 단단하면서 촉촉한 핼리벗

핼리벗은 자연산으로 북극해 주변에 산다. 지구 북극을 중심으로 보이는 바다인 북극해 주변 나라에서 잡힌다. 수입산도 러시아, 알래스카, 그린란드로 표기된다. 북극해의 풍부한 먹이사슬을 통해서 몸길이 1m, 무게 45kg 이상의 크기로 자라난다.

지난 달 북극해 알래스카에선 미국과 러시아의 두 정상이 만났다. 회담을 끝내고 나면 이곳 바다에서 잡아올린 핼리벗 점심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이 만남을 주관했던 의전담당관인 모니카 크롤리(Monica Crowley)는 두 정상의 화합을 위한 메뉴로 핼리벗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만나 대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알래스카는 스웨덴 탐험가에 의해 발견돼 원래 러시아의 영토였으나 러시아가 오스만제국과의 크림전쟁으로 재정난에 빠지게 되자 1867년 미국에 720만 달러에 팔렸다. 우연인지 러시아는 상대만 바뀌었을 뿐 크림반도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이번 회담도 우크라이나 휴전에 대한 논의였다고 한다. 150년이 지나도 반복되는 역사가 아이러니하다.

전쟁 종료를 위한 양측의 수싸움 때문인지 이번 점심은 두 정상의 회의가 길어지면서 취소됐다고 한다. 아마도 점심을 함께했다면 이 핼리벗은 역사에 남는 만찬 메뉴가 될 뻔했다.

정상회담의 준비 절차를 기록한 문서가 유출되면서 이번 점심 메뉴도 알려졌다. 요리법은 알래스카 가정에서 예전부터 해오던 '핼리벗 올림피아'(Halibut Olympia)라고 한다.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마요네즈, 사워크림을 섞어준다. 양파를 잘게 썰어 천천히 색이 나게 볶는다. 핼리벗 위에 양파 볶은 것을 올려주고 크림소스를 덮은 뒤에 빵가루나 비스킷 가루를 덮는다. 그다음 오븐에 넣어 노릇한 색이 나면 꺼내어 메쉬포테이토와 함께 접시에 내어준다.

우크라이나 평화회담의 메뉴로 선정

핼리벗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흰살생선 요리법도 SNS나 리뷰로 많이 공유되면서 생겨났다. 맥주 반죽에 튀겨낸 피시앤칩, 흰살생선을 구워 꿀과 곁들이는 메뉴도 있다. 또 흰살생선과 조개류 등을 기름종이 안에 넣고 오븐에 넣어 자체 수분으로 찌는 파피요트(Papillote)로 먹기도 한다.

핼리벗의 식감과 육질은 위의 어떤 요리법과도 잘 어울린다. 구매를 하려면 검정가자미로 검색하면 된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두툼한 생선살과 식감은 만족감을 준다.

북극해의 자연을 담은 핼리벗으로 다시 시작된 늦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보면 어떨까 싶다. 알래스카 회담의 메뉴인 핼리벗 올림피아는 조립법이 간단하니 쉽게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두툼하고 촉촉한 맛에 와인 한잔으로 정상회담 기분을 내봐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