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살아 있으면 좋은 일 생긴다고 어머니께서 그러셨잖아요."
절벽 앞에 선 '옥영'을 향해 며느리 '홍도'가 눈물로 호소한다. 조선으로 갈 배는 빼앗기고, 식량도 잃고, 남편과 재회할 희망마저 사라진 암담한 상황. 홍도의 말에 옥영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살아야 해, 살아 있어야 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엠(M)씨어터에서 서울시극단 '퉁소소리' 전막 시연이 언론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30년을 기록한 역사서이자, 조선 시대 장삼이사들의 인생사다. 동시에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러브 스토리이며, 관객을 향한 묵직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에서 호시절은 짧을지라도, 살아 있는 한 뜻밖의 은인도, 벼락처럼 찾아오는 기적도 마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날 140분간의 시연이 끝난 뒤에는 공연 관련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각색·연출을 맡은 고선웅 서울시극단장, '최척' 역의 박영민, '옥영' 역의 정새별, '홍도' 역의 최나라 등이 참여했다.
'퉁소소리'는 조선 중기 문인 조위한(1567~1649)의 고소설 '최척전'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조선시대 평범한 삶을 살던 최척 일가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청 교체기라는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30년 만에 재회하는 여정을 그린다.
지난해 초연한 이 작품은 2024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2025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대상 문화 부문 대상, 2025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을 받으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고선웅 단장은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이유로 '여성 캐릭터'를 꼽았다. "모티브는 '옥영'이었다"며 "전란과 외세의 침탈, 산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여자가 홀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옥영은 죽음까지 불사하며 최척과 결혼을 결심하고, 남장을 한 채 시련을 견뎌냈다"며 "옥영의 모습이 곧 조선의 어머니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홍도'에 대해서도 고 단장은 "집념이 강한 인물"이라며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적인 성격이기에 드라마에 추진력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옥영' 역을 맡은 정새별은 "망망대해를 배 타고 조선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느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굉장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저 또한 그 의지에 공감하며 마음을 불태우듯 연습에 임했다"며 웃었다.
공연 제목을 '퉁소소리'로 정한 이유를 묻자, 고 단장은 "정확히 말하면 '최척과 옥영전' 혹은 '옥영전'이 맞지만, 그렇게 하면 원작인 '최척전'이 섭섭해할 것 같았다"며 "최척과 옥영을 이어주는 매개가 퉁소소리이기 때문에 이 제목을 택했다"고 했다.
관객이 눈여겨볼 장면에 대해 그는 "최척과 옥영이 청춘 시절부터 이어지는 서사 전체가 중요하지만, 굳이 꼽자면 두 장면"이라며 "하나는 마지막에 온 가족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1막 끝부분, 안남(지금의 베트남)에서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고 단장은 이번 재연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선 "군살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덜어내고 다듬었다"며 "배우들과 호흡과 리듬을 조율해 나갔고, 초연 때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척' 역의 박영민에게 초연과 달라진 점을 묻자, "지난해에는 최척이라는 인물에 온전히 집중했다면, 재연에서는 '두 아들(몽석·몽선)의 아버지'라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며 "그래서 가족이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가장으로서의 마음이 더욱 생기더라"고 했다.
지난 5일 개막한 '퉁소소리'는 오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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