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 사진=고려아연
6일 별세한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대한민국의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기업으로 고속 성장시킨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꾸준함과 성실함에 기반한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기업을 일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1960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이래 부친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고려아연을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글로벌 넘버 원 비철금속 기업'으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자원 빈국인 한국에서 비철제련업을 최초로 시작하여 불과 30여년만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세계 제련소들을 추월하며 세계제일의 종합비철회사로 성장시켰다.
끊임없는 도전정신… 세계 최고 아연제련소 꿈 현실로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 설립을 준비할 당시부터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1973년 정부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한 이후 최 명예회장은 정부, 금융회사 등 여러 관계자들과 수없이 만나 협의한 끝에 1974년 8월1일 단독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최 명예회장은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선 국민투자기금과 산업은행 등에서 빌렸고 후진국 민간기업에 투자하며 자금을 빌려주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기구인 IFC를 찾았다. IFC는 7000만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지만 최 명예회장은 5000만달러에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고 실제로는 4500만달러에 공사를 완성했다.


최 명예회장은 이후 대단위 제련소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준비했다. 온산 비철단지 내에 제련소를 설립할 때부터 기술 수준과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련소를 건설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1974년 8월1일 고려아연 창립 기념식에서 최기호 창업자(앞줄 오른쪽 네 번째)와 최창걸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번째). / 사진=고려아연
그는 대단위 아연제련소 건설에 대한 경험이 일천했던 국내 현실을 감안해 기본계획과 프로세스 특허를 외국에서 도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투자시에는 비용절감이나 효율성을 따지기보다 최신 기술과 미래 연관 사업과의 상호 보완 관계에 무게 중심을 두는 장기 전략을 채택했다.

1978년 4월 공장이 설립됐으나 시운전 및 정상화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기술도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 명예회장은 이 기간 경영관리체계를 정비해 온산제련소가 빠르게 정상가동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비철금속 회사를 만드는 것을 꿈꾸고 제련소를 건설했던 최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로 이어졌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 재임 시에는 고려아연 기술연구소 설립과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산시설 확장에 힘을 쏟았다.

아연·연·동제련 통합공정, DRS공법의 연제련공장을 착공과 더불어 아연괴 LME 등록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1990년 기업공개를 추진해 투명경영 실현과 국민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하여 그룹의 기반을 확대하고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자"… 친환경 기술에도 이바지
최 명예회장은 1992년 3월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신조에 맞춰 고려아연의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 아연공장 및 연 제련 공장을 계속 증설해 나갔고, 호주에 아연제련소 SMC를 설립하며 글로벌 사업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최 명예회장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성격이었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한 투자와 모험, 끈질긴 노력으로 반드시 결과를 이끌어내는 승부사 기질을 가진 경영인이었다.

제련산업을 공해산업이 아닌 친환경사업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꾸준히 펼쳐 나가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녹색경영을 실현하는 데에도 이바지했다. 아연 잔재를 환경 친화적인 청정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등 아연잔재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했다.

2002년 명예회장으로 한발 물러 난 뒤에도 환경친화기술 등 첨단 신기술개발에 매진함과 동시에 해외 자원개발과 희소금속 및 도시광산사업 등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자원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준공사진. / 사진=고려아연
자원 리싸이클링 전담 부서를 신설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산업용 자동차용 폐배터리, 폐PCB, 아연재 등을 적극적으로 수거해 원료로 사용하는 한편 유가금속을 다시 회수함으로써 폐기물의 무분별한 처리를 막았다. 고려아연이 연간 100만톤이 넘는 각종 광석 및 재생물질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회수하는 금, 은, 인듐, 안티모니 등의 희소금속들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며 회사의 수익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최 명예회장의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의 결과는 창업초기와 경영성과를 비교해 보면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톤에서 65만톤, 매출액은 114억에서 12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회사가치의 척도인 시가총액도 최대 20조원에 육박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뤘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최 명예회장은 기업인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공사가 분명하여 인재 채용이나 업무 처리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