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 중인 가운데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되는 '임차인 거주권 9년 보장' 법안이 현실에서는 전세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사진=뉴스1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하는 가운데 임대차 기간을 9년으로 늘리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장기 거주 보장이 거래 위축과 보증금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임차인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최대 4년(2+2년)인 임대차 계약기간을 최대 9년(3+3+3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다. 전세계약을 낀 갭투자 매수를 막은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여파에 신규 전세 매물 급감이 겹치면서 전세난이 한층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전세 계약갱신청구권을 기존 1회에서 2회로 늘리고, 임대차 기간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창민(사회민주당·비례대표) 의원을 대표로 10명의 국회의원이 지난 2일 발의했다.

현재 주택시장은 전세를 대체한 월세 거래가 많아지는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14년에서 2020년까지 월세 거래 비율은 줄곧 40% 전후에 머물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 후 2022년 51%로 뛰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60%를 돌파했다.
"공급 위축 가능성, 실수요자 피해 우려"
전문가들은 장기계약 의무가 법으로 고정되면 임대사업자들이 전세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전단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장기계약 의무가 법제화되면 주택임대사업자들이 전세 계약을 기피할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이 나온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임차인 보호 기능은 강화되는 반면 전세 거주자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부동산경영학회장)는 "임대차 시장의 기본 구조가 흔들리면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며 "전세 임대인이 줄어 신규 공급이 위축되고 전세 가격 급등의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재 전세시장은 수요는 넘치지만 공급이 부족해 상승세를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임대인들이 초기 전세 보증금을 올려받을 가능성도 있다. 강희장 한국임대인연합대표는 "임대인 입장에서 9년 동안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서 초기 보증금을 높게 책정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사업체 등 관련 업종의 피해도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개업계의 직격탄도 예상된다. 신광문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책임연구원은 "세입자가 장기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게 되면 거래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대인·중개업계 부담 증가
현재 최대 4년(2+2년)인 임대차 기간을 최대 9년(3+3+3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실수요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의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스1
새 개정안은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문제에 대응해 임차인 권리를 대폭 강화하기 위함이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2019년 7.7년 ▲2021년 7.5년 ▲2023년 8.0년으로 나타났다.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2019년 3.2년 ▲2021년 3.0년 ▲2023년 3.4년으로 나타나 법적 보호기간보다 짧았다.

한 의원은 "법의 빈틈을 악용한 사기가 많아 임차인 주거 안정성을 확대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안은 임대인의 정보 제공 의무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국세·지방세 납세증명서와 최근 2년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임차인이 임대인의 재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취지다. 임차주택을 양도할 경우 새 임대인의 인적 사항과 재정 정보를 임차인에게 서면 통지해야 지위가 승계되도록 했다.

임차보증금에 상한 규제도 신설됐다. 보증금과 선순위 담보권, 국세·지방세 체납액을 더한 금액이 주택가격의 7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했다. 다만 제도 시행 초기 1년은 80%까지 허용된다. 임차인의 대항력 발생 시점도 입주 '다음날 0시'에서 '당일 0시'로 하루 앞당겼다. 세입자의 입주 날 담보권을 설정하는 전세사기를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