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처음으로 실시한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 연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은 다소 완화됐지만 사회 전반의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불평등이 확대되며 전체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는 소득뿐 아니라 자산·교육·건강 등 여러 요인을 종합해 불평등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다.
대표적 불평등 지표인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2011년 0.387에서 2023년 0.323으로 낮아졌다. 통계상으로는 소득 불평등이 완화된 셈이지만 국민 체감도는 다르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56.6%가 "한국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고 81.5%는 "경제·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건강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도 53.7%에 달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인식 격차의 원인으로 자산 불평등의 심화를 꼽았다. 2011년에는 소득이 전체 불평등 요인의 38.9%를 차지했으나 2023년에는 자산(35.8%)의 영향력이 소득(35.2%)과 비슷한 수준으로 커졌다. 즉 소득보다 자산이 불평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2018년 이후 자산 불평등은 꾸준히 확대됐고 2023~2024년 사이에는 지니계수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국내 가구 자산의 75%가 부동산에 집중된 만큼 주택 가격 변동이 가계 자산 격차를 키우며 불평등 심화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소득과 자산을 함께 고려해 보면 저소득·저자산층과 고소득·고자산층에 인구가 집중된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소득도 자산도 모두 적은 사람들과 반대로 소득과 자산이 모두 많은 사람의 비중이 특히 높다. 이러한 분포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득과 자산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함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소득과 자산을 넘어선 전반적인 불평등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불평등 수준은 과거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년(2011~2023년) 동안 소득·자산·교육·건강 등을 통합한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0.179에서 0.190으로 상승했다.
분석 결과 소득 불평등은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추세를 보였지만 자산·교육·건강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더 이상 소득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자산·교육·건강 등 다차원적 요인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 분야에서는 가구 소득에 따른 대학 진학률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소득 상위 20% 가구의 자녀는 세계대학 순위 기준 상위 50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가정의 경제적 배경이 교육 기회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자녀의 교육 수준, 나아가 사회적 지위로 이어지는 대물림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건강 분야의 불평등은 소득 수준, 거주 지역, 가구 형태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저소득층일수록, 읍·면 지역에 거주할수록, 1인 가구일수록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반 소득이 높고 도시('동' 지역)에 거주할수록 스스로 건강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는 건강 불평등이 단순히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노력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와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예컨대 부동산 자산은 행정데이터에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교육 불평등을 분석하려면 개인의 학력 수준과 가구의 소득·자산을 연계해야 하지만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건강 불평등의 경우에도 부처의 칸막이로 인해 조사 항목이 통일되지 않아 소득·자산과 건강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드러났다.
한편 국회입법조사처의 다차원 불평등 지수 연구 결과는 오는 2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공식 발표된다. 발표회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조국혁신당·개혁신당·진보당 등 5개 원내정당 정책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 주최한다. 입법조사처는 이번 발표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국회의 정책적 역할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외환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은 개선됐지만 자산·교육·건강 등 다차원적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국민 인식이 통계적으로 확인됐다"며 "이제는 소득 재분배를 넘어 부동산·세제·금융·복지 등 전 분야에서 불평등 완화를 핵심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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