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 ④정치권도 잰걸음… 법안 '전문성'은 해결과제
[제도권 편입, 달라진 가상자산]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 시동… 여야 속도 내지만 업계는 냉담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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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가상자산 시장의 시급한 위험 통제에 중점을 뒀던 1단계 입법을 넘어 시장 생태계 전반을 제도화할 포괄적인 2단계 입법, 일명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이 정치권에서 본격화된 것.
하지만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수가 1000만명을 돌파했음에도 거래 위축과 자금 해외 유출이 동시에 심화하면서 시장에서는 'K 엑소더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는 "입법 속도전보다 규제 해소와 제도 합리화가 우선"이라며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시대 개막…2단계 입법, '규제' 넘어 '혁신'으로 전환
2020년 '특정 금융 거래 정보의 보고·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자(VASP)에게 자금세탁 방지(AML) 의무를 부과한 데 이어 2023년 제정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이용자 자산 보호·불공정 거래 규제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1단계 입법이 마무리됐다. 이 법은 거래소 중심의 위험관리와 피해 보호에 초점을 맞춰 시급한 리스크를 통제하는 데 성과를 거뒀다.1단계 입법은 디지털 자산의 핵심인 발행·유통·공시 규율과 사업자의 영업행위 등 가상 자산 시장 생태계 전반을 규율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고, 시장 전반을 포괄하는 2단계 입법 제정 필요성이 대두됐다. 핵심은 가상자산 시장의 활성화와 신뢰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으로 현재 더불어민주당 이강일·민병덕 의원과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세 가지 법안이 대표적이다. 세 법안 모두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에 포함해 발행·유통·공시·거래지원 등 시장 전 과정을 규율하는 공통된 목표를 갖는다.
김재섭 의원 안은 인가업무 최소 자본금을 20억원으로 제시하며 가장 높은 진입 장벽을 설정한 반면 민병덕 의원 안은 인가업무의 최소 자본금을 5억원으로 낮추고 일부 저위험 업종에 신고제를 도입하는 등 중소 사업자의 진입 부담을 완화하려는 특징을 보였다. 이강일 의원 안은 디지털자산위원회 및 보호재단 설립을 명시하며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세 법안 모두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에 편입하고 인가제를 도입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시장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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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일 의원 안은 한국은행에 감독 권한을 부여해 중앙은행 역할을 강조했고 김재섭 의원 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50억원으로 설정, 지급결제용 고정가치형 자산에 전자금융거래법을 우선 적용해 기존 결제 시스템과의 연계성을 확보하려 했다. 민병덕 의원 안은 지급결제 기능이 강한 스테이블코인으로 범위를 한정, 금융 안정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여야도 법안 발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 차원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TF는 기존 사업자 규제와 이용자 보호 중심의 법안에서 벗어나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합리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이 이재명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된 만큼 민주당은 연말까지 관련 법안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지난 10일 '주식 및 디지털자산 밸류업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맞불을 놨다. 특위는 토큰증권(STO) 제도화, 디지털자산 ETF 도입,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 구축 등을 핵심 과제로 삼아 '종합 입법 패키지'를 추진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에 중점을 두고 관련 법안을 발의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0만 투자자, 78조 해외 유출… 입법 속도전에 앞선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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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상자산업계는 2단계 입법의 필요성과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행 규제의 합리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이용자 수가 늘더라도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형적 구조 때문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1077만명으로 사상 처음 1000만명을 돌파했다. 반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원화 예치금은 지난해 하반기(7~12월) 10조70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6조2000억원으로 42% 급감했다. 거래소 외부로 이전된 금액은 101조6000억원으로 전기(96조9000억원) 대비 5% 늘었다. 이 중 78조9000억원(약 78%)이 해외 거래소나 개인 지갑으로 이동했으며 국내에 남은 금액은 22조7000억원에 그쳤다.
FIU는 이 같은 자금 유출, 이른바 'K 엑소더스'의 주요 원인을 해외 거래소의 '고배율 파생·레버리지 상품 수요'에서 찾는다. 국내는 규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보수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지만 해외 주요 거래소들은 파생상품과 고배율 레버리지를 허용, 규제 격차가 벌어진 결과라는 설명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지난 9월 '과도한 손실 방지'를 이유로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의 레버리지를 축소하는 등 규제 강도를 높인 조치가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의 해외 이탈을 가속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규제 환경 개선 요구와는 별개로 국회가 추진 중인 2단계 법안의 연내 제정 가능성도 작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2단계 입법은 발행·유통 규율,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등 복잡하고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어 세부 논의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특히 STO 법제화나 스테이블코인 규율과 같은 핵심 과제는 기존 금융법·자본시장법과의 충돌 가능성이 높아 법안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밀한 조율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법안으로는 전문성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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