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총 45.1%로 중국 업체들(합계 49.7%)에 뒤처졌다. 2021년 70%가 넘던 압도적인 점유율이 3년 만에 무너다. 유럽은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히며 글로벌 배터리 주도권을 결정하는 핵심 무대다. 미국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는 중국 기업이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유럽 시장을 중국이 장악했다는 것은 위협으로 다가온다.
한국이 고에너지 밀도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전면에 내세워 유럽시장을 공략했다. LFP는 NCM 대비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짧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은 장점이 있다. 또 원료 공급망 측면에서 LFP의 강점이 두드러진다. 철(Fe)은 전 세계 매장량이 1700억톤에 달해 니켈(9000만톤), 코발트(710만톤)보다 압도적으로 풍부하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력까지 보강해 세계 시장을 점유해가고 있다. CATL은 5분 충전에 520km 주행 가능한 LFP 기술을, BYD는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을 높인 블레이드 배터리를 선보이며 LFP의 약점인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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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P 넘어 '꿈의 전지' 전고체 배터리 도전하는 K 배터리━
북미 ESS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돼 주목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 ESS 수요 78GWh 중 약 87%(68GWh)가 중국산이었는데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 강화로 중국산 배터리 공급이 막힐 경우 그 공백을 메울 주체는 한국 기업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동시에 K배터리 기업은 전기차 시장에서 전고체, 건식공정 등 미래 초격차 기술을 상용화하는 이중 전략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려 하고 있다. 당장 배터리 업계의 캐시카우가 ESS라 할지라도 산업 전반을 견인하는 중심축은 여전히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배터리 수요의 70~80%를 전기차가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중장기적으로 그 비중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훼손되더라도 형태를 유지해 폭발이나 화재의 위험이 현저히 적다는 압도적인 안전성을 자랑한다. 또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1000km까지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으며 충전 속도 또한 월등히 빨라 미래 전기차 시장의 표준을 바꿀 기술로 평가받는다.
소재 혁신과 함께 제조 공정의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건식전극공정'(Dry Process)이다. 건식공정은 분말 형태의 활물질·도전재·바인더 등을 혼합해 건조 상태에서 전극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생산 속도를 높이고 에너지 밀도를 개선하는 동시에 설비 투자비용까지 절감하는 획기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일럿 라인 구축과 시운전을 마치고 2~3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고체와 함께 소듐이온 배터리를 차세대 제품군으로 육성하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소듐이온은 나트륨을 주원료로 사용해 원가 부담이 낮으며 기술 발전에 따라 에너지 밀도는 LFP 배터리 수준까지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공정에도 건식 기술을 적용할 수 있어 생산비 절감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중국이 장악한 저가 시장에 대한 대응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각형 폼팩터' 배터리를 중심으로 프리미엄·볼륨·엔트리 등 세그먼트를 세분화해 맞춤형 공급망을 확장하고 있다. 프리미엄 라인은 하이니켈 배터리 기반 고에너지 셀을 중심으로 실리콘·카본 복합 소재를 접목해 주행거리와 안정성을 모두 강화했다. 중간 가격대의 볼륨 라인은 미드니켈 배터리를 적용해 가성비를 높였으며 엔트리급 시장을 겨냥한 LFP 제품도 준비 중이다. 각형 배터리는 공간 활용성이 높아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SK온은 전고체 배터리, 건식 전극 공정, 액침 냉각 기술 등 핵심 기술 전략을 수립하며 기술 리더십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 준공을 계기로 상용화 목표 시점을 기존보다 1년 앞당긴 2029년으로 조정하는 등 혁신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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