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의 214급(장보고-II)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을 수행 중인 HD현대는 이미 잠수함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 원자력 추진선 개발 역량이 더해지면서 민수·군수 기술을 아우르는 '원자력 해양 플랫폼' 구축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HD현대의 원자력 추진 기술 확보는 2022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HD한국조선해양은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의 대표적 SMR 기업 테라파워(TerraPower)에 3000만달러를 투자하며 차세대 원자력 분야에 진출했다.
투자 이후 양사는 육상형 SMR 개발 협력에 착수했다. 2024년 12월에는 테라파워로부터 345메가와트(MW)급 소듐냉각고속로(SFR)용 원자로 용기(Reactor Vessel)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설비는 미국 와이오밍주 캐머러시에 설치될 예정으로, 핵폐기물 발생량이 기존 원자로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고효율 차세대 모델이다.
SFR은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4세대 원자로로,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아 군수용 잠수함 추진체에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는 이 기술을 선박 추진 시스템으로 확장해 상선·군함 양쪽에서 활용 가능한 기반을 마련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올해 3월 미국에서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과 만나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 및 공급망 확대'를 논의했다. 이어 5월에는 서울에서 재회해 협력 진척 상황을 점검했다.
양사는 앞서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HD현대는 조선 분야의 정밀 제작·용접·열처리 기술을 활용해 원자로 압력용기 등 핵심 부품을 제작하고, 테라파워는 이를 기반으로 미국 내 상용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HD현대는 올해 2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해양에너지 박람회에서 SMR 기술을 적용한 1만5000TEU급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 모델을 공개했다.
이 선박은 기존 디젤 추진선과 달리 연료탱크와 배기장치가 필요 없어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확보된 공간에 컨테이너를 추가 적재할 수 있어 운항 경제성도 높다. 현재 개발률은 약 50% 수준이며,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HD현대는 이미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해당 선박 설계 모델에 대한 기본인증(AIP)을 획득했다. 이는 원자력 추진선 설계안으로는 세계 최초 사례 중 하나다. 향후 안전성 검증과 국제해사기구(IMO) 규제 논의가 병행되면,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HD현대가 보유한 잠수함 건조 기술과 SMR 추진 시스템은 한미 원자력 협력의 실질적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해군이 보유한 214급 잠수함은 디젤-전기식으로 작전 지속시간과 잠항 능력 면에서 한계가 있다. 반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장기간 잠항이 가능하고 은밀성과 작전 반경이 크게 향상된다.
HD현대 관계자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연구 개발 및 건조에 국가대표 조선기업으로서 적극 협력해 우리나라와 동맹국 미국의 세계 해양 안보에도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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