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이 4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스틸코리아 2025'에서 기조강연을 하던 모습. /사진=김대영 기자
"세계화는 끝난 게 아닙니다. 형태가 바뀌고 있을 뿐입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4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스틸코리아 2025' 기조강연에서 "지금은 탈세계화가 아니라 '리와이어링(Rewiring)' 즉 세계 경제 질서가 새롭게 정렬되는 시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런 전환기에 산업정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철강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 주최한 '스틸코리아 2025'는 철강업계의 연례 최대 정책포럼으로 올해는 '글로벌 전환기 철강산업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렸다. 산업계와 학계, 정부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 철강산업 전망',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 등 세션별 발표가 이어졌다.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권 원장은 최근 세계화 흐름을 진단하며 한국 산업의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세계화의 핵심은 효율이었지만 지금은 안보와 안정이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이어 "1989~2008년은 세계화의 전성기였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AI·온쇼어링(자국 생산시설 확대)·지정학 리스크가 겹치면서 새로운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세계화가 퇴조하는 게 아니라 다시 배선을 짜는 리와이어링의 시기"라며 "이 시기에 산업정책이 부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IMF 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발표된 국가별 산업정책의 절반 가까이가 '보호성 산업정책'이며 그중 70%가 선진국에서 시행됐다. 권 원장은 "미국과 유럽이 과거 중국의 보조금 정책을 비판했지만 지금은 같은 방식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도 언급됐다. 권 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율 관세는 단순한 통상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의 재원 확보 방식이었다"며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 확대 역시 그 구조 속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대미 수출은 2020년 741억달러에서 2024년 1278억달러로 급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공동화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플라자합의 이후 상황도 사례로 제시됐다. 권 원장은 "일본은 해외투자 확대 이후 국내 생산기반이 약화되면서 '투자수익형 경제'로 바뀌었다"며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 역동성이 떨어지는 현재 상황에선 경쟁을 촉진하고 혁신을 다시 자극할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철강산업에 대해서는 "이제 단순히 철을 잘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첨단소재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공급과잉·탄소중립 압박·기술전환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철강산업은 공정 효율화와 AI 품질관리, 에너지 최적화가 필수"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마지막으로 "한국은 개방형 무역국가로서 폐쇄보다 열린 전략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보조금 나눠주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경제 전략의 뼈대를 세워야 한다"며 산업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