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모기지회사 페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은 부실 담보평가로 막대한 손실을 일으켰다. 은행과 감정평가사가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여 담보가치를 과대평가한 것이 부실 대출과 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진 사례다.
도드-프랭크법은 감정평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항을 별도로 둬 ▲대출은행은 감정평가 결과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 ▲대출 담당자는 감정평가사 선정 과정에 개입 금지 ▲은행 자회사나 모기지 브로커가 작성한 감정평가서로 대출 실행 불가 등을 명시했다.
이에 연방주택금융청(FHFA)과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이 감정평가의 감독 주체로 지정됐고 금융회사와 감정평가사의 제도적인 분리가 시행됐다. 한국도 은행의 자체평가를 원칙상 금지하지만 일부 예외 허용을 인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19일 은행이 감정평가사를 직접 고용해 담보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감정평가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현행법상 감정평가법인 등으로 인가 받은 회사만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직접 감정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은행권은 금융감독원의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에 따라 자체평가의 예외 조항이 인정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담보가치 산정이 외부 감정평가뿐 아니라 기준시가·거래사례 비교와 내부평가 등을 거쳐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부 감정평가가 많은 비용과 절차를 들여야 하는 만큼 대출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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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성 있는 제3평가기관 필요"━
이에 기관 간의 업무 조정을 담당하는 중간 시스템의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된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은행에서 월급을 받는 내부 감정평가사가 어떻게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느냐"며 "이해관계를 벗어난 외부 중재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과 국토부가 중간의 시스템과 기관을 만들어 감정평가를 배분하고 결과를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한도를 제한하는 규제가 운영되고 있어, 부실 대출의 위험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비주택 담보대출과 상업시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은 별도 규제의 틀이 미비하다.
이들 대출은 사업성과 현금흐름 등 비계량 요소의 영향을 받는 만큼, 내부 평가가 과잉 대출로 이어지는 전형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금융 건전성과 은행의 도덕적 해이, 시장 신뢰의 훼손도 막을 수 없다.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는 "은행이 감정평가사를 자체 고용하면 객관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며 "최소 2개 이상의 외부 감정평가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전국은행연합회 등과 개선안 마련을 위한 TF 회의를 조만간 진행할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자체평가 업무를 단계별로 축소하고 감정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가치평가부'의 부서 명칭을 변경하겠다는 의견을 TF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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