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의 캡슐커피 브랜드 '카누 바리스타'는 2023년 2월 론칭 이후 약 3년 만인 올해 누적 매출(머신·캡슐 합산) 1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사진=동서식품
국내 캡슐커피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후발주자인 동서식품이 나홀로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인 입맛에 맞춘 '대용량 캡슐' 전략이 머신 교체 주기와 맞물리며 소비자의 선택을 끌어냈다는 분석이다. 후발주자의 불리함을 영리한 전략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동서식품의 캡슐커피 브랜드 '카누 바리스타'는 2023년 2월 론칭 이후 약 3년 만인 올해 누적 매출(머신·캡슐 합산) 1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레드오션으로 평가받는 캡슐커피 시장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점유율을 확보한 동서커피의 비결은 호환을 버리고 독자 규격을 택한 과감한 승부수에 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은 '타이밍'과 한국인의 입맛을 파고든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다.


동서식품이 시장에 진입한 2023년은 캡슐커피 시장의 성숙기인 동시에 변곡점이었다. 국내 캡슐커피 시장이 급격히 확장된 시기는 코로나19 무렵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387억원에서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1980억원으로 1년 새 42.7% 신장했다. 시장 성장이 가속화되는 동안 네슬레의 네스프레소 등 선두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며 독주했다.

동서식품은 당시 판매된 머신의 통상적인 교체 주기가 돌아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업계에서는 통상 캡슐 커피 머신을 포함한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의 교체 주기를 3~5년 정도로 본다. 기계의 내구성이 수명을 다하면서 커피 맛도 떨어지는 시기를 뜻한다.


커피 머신 내부는 항상 고온의 물과 열기에 노출되어 있어 내부의 밀봉 부품(씰), 펌프, 전기 관련 장치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거나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물속의 미네랄 성분이 보일러나 배수관 등에 스케일(이물질)이 쌓이면서 커피 추출 시 압력이 낮아져 커피 맛도 떨어진다.
캡슐 하나만으로 '투샷 아아' 맛 구현
동서식품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2020년 전후로 머신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2024~2025년에 대거 기기 변경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이에 기존 시장에 얹혀가는 '호환 캡슐' 대신 타사 기기와 호환되지 않는 '독자 규격' 머신을 출시하는 강수를 뒀다. 소비자가 기계를 바꿀 때 아예 카누로 갈아타게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한 무기는 '9.5g'이었다. 동서식품은 국내 소비자들이 에스프레소 투샷(Two-shot) 기반의 진한 아메리카노를 선호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커피 애호가 사이에서 기존 캡슐(약 5.5g)은 양이 적어 캡슐 두개를 내려야 한다는 불만이 있다는 점을 포착하고 원두량을 1.7배 늘렸다. "기계를 바꾸면 캡슐 하나로도 전문점 커피 맛을 낼 수 있다"는 명분을 제시해 독자 규격의 진입장벽을 구매 유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전략은 수치로 증명됐다. 닐슨아이큐코리아 집계 결과 카누 바리스타의 시장 점유율은 론칭 초기인 2023년 2분기 7.4%에서 1년 만인 2024년 3월 약 17%로 2배 이상 상승하며 단숨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성장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동서식품 자체 집계 기준 올해 캡슐커피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고 누적 머신 판매량은 30만대를 넘어서며 네슬레 독주 체제에 균열을 냈다.

동서식품은 안착에 만족하지 않고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현재 ▲어반 ▲브리즈 ▲페블 등 머신 3종과 전용 및 호환 캡슐 등 총 33종으로 라인업을 확대했다. 최근에는 환경부·우정사업본부와 협약을 맺고 우체통을 활용한 폐캡슐 회수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층까지 공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후발주자가 독자 규격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건 리스크가 큰 전략"이라면서도 "머신 교체 수요가 폭발하는 시점에 맞춰 한국 소비자에게 특화된 스펙을 내세운 것이 시장 안착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