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회주의자'가 슈퍼리치 상속세를 추진하며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스위스 키스톤
지난달 30일 스위스 급진 좌파 성향 '청년사회주의자(JUSO)'가 발의한 '슈퍼리치 상속세'가 국민투표에서 78.3% 반대로 부결됐다. 발의안은 상속·증여 재산이 500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914억 원) 이상일 경우 50%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JUSO는 해당 제도를 도입하면 연간 약 10조 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계산하며 이를 기반으로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와 재생에너지 투자에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스위스 경제 생태계를 전환하자는 취지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적용 대상은 2500명으로 전체 인구 896만7407명 중 0.03%에 불과하다. JUSO는 '초부유층은 수십억 달러를 상속받고 우리는 위기를 상속받는다'는 포스터를 들고 거리로 나섰지만 스위스 국민 80% 가까이는 소수 부유층만을 겨냥한 법안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스위스 철도 제조기업 슈타들러 레일의 슈풀러 이사회 의장은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이전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도 이번 스위스 국민투표 결과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20%)이 가산되면 최고 60%까지 올라 일본(55%)보다 높다. 이는 기업 승계 과정에서 경영권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 순자산 100만 달러(약 14억6800만 원) 이상 고액 자산가 순유출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4위를 기록했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지만 높은 상속세 환경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상속세 개정 방향을 보면 공제 한도 상향 등 세부적 조정에 머물러 있다. 최고세율 인하나 배우자 공제 확대가 언급되긴 하지만 2000년 이후 25년간 경제 환경이 크게 변화한 만큼 제도 자체의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웨덴과 캐나다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고 독일은 '이원재단 제도'를 통해 상속 과정의 부담을 줄이면서 기업 경영 환경을 보장하고 있다.

자본이득세는 상속 시점이 아닌 자산 매각으로 실제 이익이 발생했을 때 과세하는 방식이다. 이를 도입하면 기업 오너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분을 급매하거나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넥슨 지주사 NXC의 2대 주주가 기획재정부가 된 것도 과도한 상속세 때문이다. 김정주 창업주 사망 후 약 6조 원의 상속세가 부과되며 오너일가는 지분 30.65%를 정부에 넘겨야 했다.

독일의 이원재단 제도도 새로운 상속세 모델로 거론된다. 해당 제도는 가족재단과 공익재단을 분리해 가족재단은 경영권을, 공익재단은 경제적 이익을 갖는 구조다. 기업이 창출한 수익을 공익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해 세제 혜택을 받고 가족재단은 의결권을 유지해 경영권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한 국가는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곳"이라며 "한국에서는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오너가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주식을 팔지 않으면 과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국에서 현실화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독일식 이원재단 제도에 대해서는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이원재단 제도가 더 현실적이며 기업에는 연속성이 필요하다"며 "승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왜 가족이 승계하는지는 사회·문화적 차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단을 통해 안정적으로 기업 경영이 가능하고 공익재단이 공익적 책무를 다한다면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며 "공익재단이 본연의 기능을 한다면 사회 환원 구조에도 긍정적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