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이 11일 발표한 '자동차보험 차량수리 관련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차와 수입차를 합친 범퍼 교환 및 수리비 규모는 1조3578억으로 추산됐다. 이는 같은 기간 자동차보험 전체 수리비 7조8423억의 17%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경미한 손상을 수리 위주로 처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2017년 '경미손상 수리기준'이 도입됐지만 현장에서의 적용률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 국산차 범퍼 수리 및 교환 건수 가운데 경미손상 수리기준이 실제 적용된 비중은 4%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대부분의 경미 사고에서 여전히 범퍼 교환이 선택되고 있다는 의미다.
보험연구원은 경미손상 수리기준의 실효성이 높아져 범퍼 교환 건수가 30% 감소할 경우 전체 수리비가 6.4%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자동차보험료 약 20조원 규모에 단순 대입하면 보험료가 0.4%가량 낮아질 수 있고, 대차료·렌트비 등 간접손해 감소까지 감안하면 보험료 인상 압력 완화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미한 접촉 사고에도 범퍼를 교환하는 관행이 지속되면서 자동차보험 수리비와 보험료 인상 압력을 키우고 있다"며 "경미손상 수리기준의 실효성을 높이고, 교환보다 수리를 우선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범퍼 교환 관행과 더불어 시간당 공임 체계도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국내 자동차보험 정비 공임은 정비업계와 보험업계가 자동차보험정비협의회에서 인상률을 협의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지만, 인플레이션과 정비원 임금, 자본비용, 자동차보험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근거는 미국·일본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은 주 단위로 자동차 수리공임 실태조사를 실시해 다른 주 공임 수준, 정비업체 운영비, 인건비, 물가, 보험료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공임 기준을 정한다. 일본 역시 정비업체와 보험회사가 각각 인건비·물가·정비업 경영상황 등 수치화된 근거자료를 제시한 후 공임을 협의하고, 협상 경위와 결과를 문서로 남기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인건비·자본비용·물가를 반영한 근거 중심의 시간당 공임 협의체계를 마련하고, 범퍼 등 외장 부품에 대한 경미손상 수리기준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불필요한 범퍼 교환 축소가 수리 기간 단축과 부품비·대차료 절감으로 이어져 자동차보험 수리비 구조를 개선하고 보험료 인상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근거에 기반한 공임 협의체계와 경미손상 수리기준의 법제화를 통해 정비업계와 보험업계 간 상생 기반을 마련하고, 보험계약자의 공정한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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