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출석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사진=뉴스1 /사진=(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영풍·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설립 자금 조달을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두고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미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 프로젝트에 11조원 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기업에 지분 10%를 배정하고 2조9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섰다. 이번 유상증자는 자금 확보와 함께 한미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영풍·MBK 연합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고려아연의 클락스빌 제련소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풍·MBK는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고려아연 측이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번 가처분 신청이 미국 정부의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 전략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모양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 정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심 광물 독립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앞서 MP머티리얼즈 지분을 확보하며 희토류 자립화에 나선 바 있다.

한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 17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재무적인 부담에도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에 대해 희귀광물을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도 "고려아연 제련소에 대해 좋게 보고 있다"고 힘을 보탰다. 김 장관의 '재무적 부담' 언급은 고려아연이 전략적 투자를 위해 부담을 감수했다는 의미로,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제3자 유상증자의 본래 목적이 투자금 확보라는 점을 시사한다는 해석이다.


영풍과 MBK 측은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와 관련한 가처분 신청이 외신에 보도되자 사업 자체를 비판하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해 제련소 프로젝트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MBK 창업주인 김병주 회장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자국 정부와의 대립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부와 갈등이 불거질 경우 MBK파트너스의 북미 LP(유한책임투자자)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MBK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온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 핵심 광물 독립 기조에 반하는 행보로 비칠 경우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MBK 투자자 가운데 미국 공적 기금 비중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MBK가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을 위험이 크지만 영풍과의 공조를 쉽게 끊지 못하는 배경으로는 양측이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이 거론된다. 영풍이 고려아연 경영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MBK를 끌어들이며 계약을 맺었으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MBK가 고려아연 인수 시 상당한 기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약 구조가 설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영풍과 MBK가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고려아연을 상대로 공세를 이어가며 정치권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물러서지 않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콜옵션 행사 조건과 가격 등이 공개되지 않은 것도 논란을 키운다.

영풍과 MBK가 가처분을 강행하며 협력을 지속할 경우 MBK의 펀드 운용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투자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핵심 광물 자립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 북미 투자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한국 정치권의 비판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는 평가다. 앞서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와 롯데카드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MBK를 향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한미 안보 협력 강화에 기여하는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마저 지연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정부 간 관계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지난해부터 격화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한 축인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지분율은 44.2%이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지분율은 19.41%다. 최 회장 우호 지분을 포함해도 32%에 불과하다. 오는 26일 유상증자가 이뤄질 경우 MBK·영풍 연합의 지분율은 44.24%에서 40% 이하로 낮아지고 최 회장 우호 지분율도 29%로 희석된다. 미국 정부가 최 회장을 지지할 경우 최 회장 우호 지분은 39%대까지 확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