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지난 5월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00억대 횡령·배임 혐의 관련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형량을 1년 감경받았다. 재판부가 1심에서 실형 선고의 결정적 근거가 됐던 지인 업체 부당 지원 혐의를 '경영상 판단'으로 인정하며 무죄로 뒤집었다. 다만 법인카드 유용 등 개인 비리에 대해서는 유죄를 유지하며 실형을 선고해 조 회장의 현장 복귀는 결국 무산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는 22일 조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회장의 형량을 판결 확정 전 범죄 징역 6개월, 확정 후 범죄 징역 1년 6개월로 각각 나누어 선고했다.

이번 재판의 최대 승부처는 조 회장의 지인인 박지훈 대표가 운영하는 '리한'에 계열사 자금 50억원을 대여해준 행위의 배임 성립 여부였다. 1심은 적정한 채권 회수 조치가 없었다며 유죄를 인정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경영상의 판단'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비전형 담보인 화성공장 우선매수권이 담보로서의 실질적 가치가 있었다"며 "대여 당시 기준으로 선순위 채권을 제외하고도 약 100억원의 담보 가치가 상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히 "금융기관이 아니더라도 일반 회사가 여유 자금을 활용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있으며 당시 피해 회사가 400억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4.6% 이율로 담보를 잡고 대여한 것이 경영상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MKT(한국프리시전웍스) 관련 '타이어 몰드 단가 조작' 혐의 역시 항소심에서 무죄가 유지됐다. 검찰은 조 회장이 신단가 테이블을 통해 계열사에 유리한 가격을 몰아줘 회사에 131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단가 테이블은 원가 조사와 시뮬레이션을 거쳐 상당히 합리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수치를 조작해 사익 편취 도구로 활용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수직 계열화에 따른 경영상의 효과가 나타났다면 이는 경영상 판단으로 배임죄를 부정할 사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감형에도 재판부가 실형을 유지한 배경에는 조 회장의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한 경고가 담겼다. 재판부는 조 회장이 법인카드로 고급 가구를 구입하거나 슈퍼카 5대를 회사 명의로 리스해 사적으로 사용하며 기사 인건비 등 9억원 이상의 회삿돈을 쓴 점을 배임으로 지목했다.

백강진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과거 재벌 총수들에게나 보이던 시대착오적 도덕적 해이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후진적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미 한 번 집행유예를 받았음에도 재판 중에 범행을 지속한 점을 볼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조 회장 측이 호소한 집행유예 선처를 거절했다.

조 회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자필 반성문을 제출하고 한온시스템 인수 및 2026년 포뮬러원(F1) 입찰 등 그룹의 명운이 걸린 현안을 위해 경영 복귀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총수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더라도 노골적으로 사익을 추구한 경영자를 복귀시키는 것은 기업 문화 개선에 부정적"이라고 일축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총수 공백 상황을 마주했다. 1년의 형기 단축에도 수조 원대 규모의 한온시스템 인수 후 통합(PMI) 작업과 글로벌 시장 보호무역주의 대응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오너의 공백이 경영에 지장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앤컴퍼니그룹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혹스럽다"며 "향후 대응 방안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