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30일 대한민국에서 마지막 사형이 집행됐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함. /사진=클립아트코리아
1997년 12월30일 대한민국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이날 전국 교정시설에서 사형수 23명이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고 이후로 국내에서 사형은 집행되지 않아 이날이 현재까지 마지막 사형집행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사형 집행은 국내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같은 날 동시에 처형된 사례로 남아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당시 이후 30년 가까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사형이 법적으로 폐지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사형 확정 판결도 내려지지 않고 있다.
그날 처형된 사람들은 누구였나
사형 집행은 서울구치소를 비롯한 주요 교정시설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집행 대상자들은 강도·연쇄살인, 아동·여성 대상 잔혹범죄, 조직폭력 등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중범죄자들이었다. 죄명별로 보면 살인 15명·강도살인 4명·존속살해 및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각각 1명·특가법위반(강도강간 등) 2명이다.

집행 대상자 중에는 ▲1990년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법정 증인을 살해한 변운연 ▲1991년 여의도 광장에서 승용차를 질주시켜 2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김용제 ▲1991년 당시 경찰관 신분으로 경기도 의정부에서 총기를 난사해 시민 4명을 살해한 한 김준영 등이 포함됐다. 연쇄살인범 김선자도 이 명단에 포함됐다. 김선자는 남편과 친척, 이웃 등을 차례로 살해한 후 보험금을 가로챈 범죄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당시 사형장에 입회했던 검사와 교도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수의 사형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비교적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주변을 위로하는 말을 남긴 사형수도 있었다.

대규모 사형 집행은 김영삼 정부 임기 말에 단행됐다. 그러나 이듬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사형 집행을 중단하는 비공식 방침을 유지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한국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진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린 2021년 2월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양부모 사형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사형은 멈췄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법적으로 사형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형법과 군형법에는 사형 조항이 남아 있고, 사형 확정 수형자도 교정시설에 수감돼 있다. 다만 사형 선고는 해마다 줄었고, 상당수는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2016년 이후에는 사형 확정 판결조차 나오지 않았다. 실제 집행이 장기간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형제는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형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폐지론은 생명권의 절대성과 헌법 가치, 국제 인권 규범을 근거로 완전한 사형 폐지를 요구한다. 반면 유지론은 극악 범죄에 대한 최후의 형벌로서 사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범죄 피해자 보호와 사회적 응보 감정도 주요 논거로 제시된다.

한국 사회는 30년 가까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국가는 어디까지 생명을 처벌할 수 있는가. 정의는 강한 응징으로 완성되는가, 아니면 멈춤으로 증명되는가. 사형장은 닫혔지만, 사형제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