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로고/사진제공=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 지역 지자체들이 여성과 1인가구의 야간 안전 강화를 위해 추진하던 방범등 설치 사업이 한국전력공사의 내부 규정에 가로막히면서 공공기관이 가장 취약한 시민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구미·김천 등 대구·경북 지자체와 경찰은 범죄 예방을 위해 주택가 골목과 원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여성안심귀가길'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가로등·방범등 확충은 물론 CCTV 설치, 비상벨 운영 등 다각적인 안전 대책을 추진하며 야간 보행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과 달리 한전은 전주 사용을 사실상 전면 차단하며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들은 골목길과 통학·귀갓길 등 범죄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방범등 설치를 확대해 왔지만 한전의 전주 사용 제한으로 사업이 잇따라 중단되고 있다. 전주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 별도의 전용등주를 설치해야 하는데 수천만원의 추가 예산과 길게는 1년 가까운 행정 절차가 뒤따라 사실상 사업 추진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과 1인가구에게 돌아가고 있다. 방범등이 설치되지 않은 어두운 골목은 여성과 청년 1인가구에게 여전히 '두려운 귀갓길'로 남아 있다. 여성안심귀가길 조성을 위해 지자체와 경찰이 협력하는 상황에서 공기업의 내부 규정이 현장의 안전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머니S> 취재 결과 한전은 전주 보호와 중대재해 예방을 이유로 전주 사용 기준을 대폭 강화해 고압선로·저압 삼상선로·인입선 전주는 물론 노후·보강 대상 전주와 강도계산 부적합 전주까지 광범위하게 사용을 금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용등주 설치가 가능한 경우조차 전주 사용을 제한해, 현장에서는 "전주는 쓰지 말라는 선언과 다름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자체들은 이미 고소작업차 사용 등 안전 조치를 강화해 시행하고 있음에도 전주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 규제이자 책임 회피라고 지적한다. '안전'을 명분으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성·1인가구의 야간 안전 공백에 대해서 한전은 "내부 규정상 불가"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여성안심귀가길 조성을 위해 경찰과 협력해도 방범등 설치가 막히면 모든 노력이 무력화된다"며 "현 기준대로라면 주택가 골목에 방범등을 설치할 전주는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경찰이 범죄 예방을 위해 한 발씩 전진하는 동안 한전은 경직된 규정으로 뒤로 물러서고 있다는 평가다. '안전'을 말하는 공기업이 오히려 시민의 안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전의 공공성·책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