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파도가 쉬지 않고 백사장으로 달려드는 해안. 입춘이 지났지만 바닷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그래도 코끝에 걸려드는 바람 줄기엔 화신(花信)인 듯 훈풍이 맴돈다. 동백섬엔 저녁노을보다 더 붉은 동백꽃이 화사하고….

 

한반도 남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부산 해운대는 늦겨울에도 볼거리가 많다. 우선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는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시민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부산이 벡스코를 통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21세기 부산 경제를 책임질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전시컨벤션산업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시민들이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다. 이미 부산엔 해양·조선·수산·기계·자동차·신발·섬유 등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는 산업들이 존재하고, 주변에 해운대를 비롯한 관광자원과 호텔 등 전시컨벤션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사 때문에 이곳을 찾은 외국 기자단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해운대의 아름다움을 각인시킨 것도 큰 수확이다.



◆ 최치원도 반했던 해운대 동백섬 풍경

 

해운대 백사장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동백섬엔 해운대 동백섬을 사랑했던 신라 말의 대학자 최치원의 체취가 아직도 남아있다. 또 해안 갯바위와 모래밭엔 소망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로 늘 북적거리며, 열다섯 굽이 달맞이길은 대한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저녁달’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해운대의 진주’라 할 수 있는 동백섬은 예전에도 명성이 높았다. <동국여지승람>엔 ‘겨울과 봄 사이 동백꽃이 땅에 쌓여 지나가는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서너 치나 된다’고 적혀 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동백나무·소나무 어우러진 아늑한 숲길은 한 번 들어서면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정겹다. 붉은 동백꽃 너머로 감상하는 파란 바다도 더 없이 좋고,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도 손짓해 부르면 뱃고동을 울려줄 정도로 가깝게 보인다. 동백섬은 한 바퀴 둘러보는 데 30~40분 정도면 충분할 만큼 아담하다.

 

최치원도 난세를 슬퍼하며 떠돌다 동백섬의 절경에 반해 한참을 머물렀다. 해운대라는 이름도 동백꽃 흐드러진 섬을 거닐던 최치원이 그 절경에 취해 섬 남쪽 해벽에 자신의 자인 해운(海雲)을 따서 ‘海雲臺’라는 세 글자를 새긴 데서 비롯되었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백섬 남쪽 끄트머리 바위에 아직도 이 글씨가 남아 있다.

 

한편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2차 정상회담이 열린 ‘누리마루 에이펙하우스’는 동백섬의 새로운 명소. 이곳은 우리 전통의 정자를 연상케 하는 타원형의 공간에서 해운대 백사장과 오륙도, 그리고 멀리의 광안대교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누리마루를 지나 하얀 파도 감상하며 동백꽃 그늘진 갯바위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 문득 한 여인이 반긴다. 거센 파도에도 아랑곳 않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이 여인은 전설의 황옥공주. 먼 옛날 바다 속 인어의 나라 ‘나란다’ 왕국에서 육지로 시집온 공주는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고향이 그리워 밤마다 눈물지었다고 한다. 해운대의 명물이기도 이 인어상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건 애달픈 전설 때문이리라.

 

인어상을 지나면 드디어 눈을 밟을 때처럼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울리는 해운대 백사장. 쉬지 않고 드나드는 파도는 도시를 벗어난 사람들의 가슴을 속 시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길이 1.8km에 이르는 해운대 백사장은 단순히 경치 좋고 모래 고운 그런 백사장이 아니다. 여기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달(月)’의 힘이다.

한여름 해운대를 찾은 피서 인파가 하루 수십만 명을 헤아리는 건 이미 유명하거니와 한겨울에도 이곳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올해는 양력 2월21일)엔 하루 3만~4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해운대에서 보름달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달맞이객들은 먼저 촛불을 밝혀 들고 준비해 온 떡과 과일 등을 바다에 바치며 한 해의 평안을 비는 ‘용왕먹이기’를 하며 소망을 간절히 빈다. ‘용왕먹이기’를 끝낸 달맞이객들은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이 바다 위로 떠오를 때 ‘달집태우기’를 한다. 그 후 출렁이는 파도 속에 녹아내리는 황금 달빛에 취해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래서일까 ‘해운대 저녁달’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석굴암 해돋이 등과 함께 당당히 대한팔경의 하나에 포함되기도 했다. 해운대의 저녁달을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는 바로 ‘달맞이고개’다.



◆ ‘누우면 山月이요 앉으면 海月이라’

 

파도소리를 뒤로 하고 달맞이고개를 오르다 보면 귓전에 들려오는 전설 한 토막. 옛날 이 고을 도령이 사냥 중 미모의 처녀를 만나 서로 사모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듬해 정월 보름달이 뜨면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로를 연모했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대보름날 다시 만난 이들은 달님에게 둘의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 결국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해피엔딩이기 때문일까. 훗날 이 전설은 사랑에 빠진 부산의 선남선녀들이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 올라 달님을 보고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민속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도 이 언덕길은 사랑을 속삭이는 청춘남녀들로 북적댄다.

 

달맞이고개에서도 보름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엔 해월정(海月亭)이 세워져 있다. 1997년에 세워졌으니 그리 오래된 정자는 아니지만 달맞이객들은 여기서 해운대 저녁달을 감상한다. 9세기엔 대문장가 최치원이 동백숲을 거닐며 해운대라 이름 지었거니와, 지난 20세기엔 당대 최고 문인인 춘원 이광수가 여기에 들러 저녁달을 노래하기도 했다.

 

‘누우면 산월이요 앉으면 해월이라. 가만히 눈감으면 흉중에도 명월 있다. 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명월 싣고. 어이 갈거나 어이 갈거나. 이 청풍 이 명월 두고 내 어이 갈거나. 잠이야 아못데 못자랴. 밤새도록.’

 

◆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 구서 나들목→ 도시고속화도로→ 원동 나들목→ 충렬로→ 해운대.

 

◆ 숙박



해운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엔 웨스틴조선(051-749-7000), 메리어트호텔(051-743-1234) 등 특급 호텔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해변에서 조금 벗어나면 모텔급 숙박업소가 많다.

 

◆ 참조



해운대구청 대표 전화 051-749-4000, 부산아쿠아리움 051-740-1700, 추리문학관 051-743-0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