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힘을 빌려 권익 찾기에 나서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금융투자업계가 소송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해 씨모텍 유상증자와 관련해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한 동부증권을 필두로 LIG건설의 기업어음(CP)을 판매한 우리투자증권, 중국고섬을 상장한 대우증권이 잇따라 소송을 당했다.

최근에는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조작과 관련해 증권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식워런트증권(ELW) 거래를 했던 개인투자자들도 법원의 판단 여부에 따라 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흐름은 투자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법무법인 증가도 한몫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에서는 금융투자회사들의 의식 및 서비스 수준이 성숙하지 못한 것도 투자자들의 소송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CD금리 담합 등 집단소송 '암운'

최근 금융투자업계에는 집단소송의 암운이 드리웠다. 아직 소송이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소송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금융소비자원은 CD금리 담합과 관련해 은행을 상대로 'CD연동 개인·기업대출자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준비중이다. 금소원은 향후 소송대상을 증권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화선 금소원 총괄지원본부장은 "2010년 이후 CD금리에 왜곡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며 "추진속도 등을 감안해 현재는 은행만을 상대로 준비중이지만 앞으로 증권사를 비롯한 전 금융권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CD금리 조작을 통해 직·간접적인 이득을 얻은 것이 없더라도 금리 왜곡으로 CD연동 대출자의 피해가 발생했고 호가를 제시한 증권사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다. 법원에서 ELW 부당거래와 관련해 증권사 대표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면 그 결과에 따라 개인투자자들도 소송에 나설 채비를 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이 제기된다면 시장침체 등으로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있는 금융투자회사들은 승패를 떠나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소송에 지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집단소송은 1명 또는 복수의 당사자가 대표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수행하지만 판결의 효력은 이해관계자 전체에게 미친다. 상황에 따라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미지 때문에"…울며 겨자 먹는 증권사

금융투자회사는 투자자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되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투자자와의 분쟁이 이슈가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분쟁이 격화됐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원하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거나 투자자를 기만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어서다.

투자자들이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로 금융회사들은 투자자의 민원이 제기되거나 소송을 당했을 때 약자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A증권사 컴플라이언스 담당 임원은 "투자자와의 분쟁이 이슈가 되면 회사가 갖고 있는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능하면 빠르고 원만하게 합의를 추진한다"며 "기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경우라면 조금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더라도 분쟁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지난해 이후 주식시장이 침체되면서 투자자로부터 항의를 받는 경우도 늘었다.
 
B증권사 관계자는 "몇달 전에 추천했던 주식이 예상보다 크게 빠지면서 손실을 본 투자자가 보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며 "업계에서 이런 전화를 받는 사례가 예년에 비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소송이나 민원제기, 항의 등이 많아지는 것은 권리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금융회사와 직원들이 이미지 실추와 고객이탈 등을 우려해 저자세를 취하는 점을 악용하는 투자자도 일부 있다고 지적한다.

C증권사 상무는 "얼마전 투자수익률을 빌미로 보상을 하지 않으면 해고되도록 하거나 소송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투자자가 있었는데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맞대응 했더니 합의를 포기하고 돌아섰다"며 "금융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증권사들이 그런 항의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합의금을 받아내려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D법무법인 변호사는 "찾아오는 의뢰인들 대부분은 금융회사 직원이 설명·고지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손해를 본 경우지만 소송을 단순히 투자손실 만회 수단으로 생각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이런 사례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 관행 등 업계도 문제

소송 등 분쟁이 증가하고있는 것에 대해 금융회사와 직원들의 의식이 낙후돼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금감원 검사 이후 제재를 받은 임직원은 전금융권역에서 477명에 달했다. 이 중 증권은 95명으로 보험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기관투자자에게 고객의 주식 매도 주문을 미리 알려준 것을 비롯해 불공정거래 주문수탁금지 위반, 불건전 영업행위 금지 위반, 시세조정 금지위반 등 징계 사유도 다양했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업계 전반에서 투자자 보호와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진 일부 임직원들이 불공정거래 등으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례가 끊이지 않아 고객의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며 "금융당국이 제재수준을 높이는 것과 함께 업계 내의 자정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상담을 받으러 오는 투자자 대부분은 일정수준 이상의 수익은 무조건 보장된다는 창구직원의 말을 듣고 상품에 가입했다가 실패한 경우"라며 "수익성만을 강조하는 판매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불완전판매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금융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고 의무를 소홀히 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